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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삼위일체 (9)
이참리의 하루한장

왼쪽 -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yov; 1360-1427)가 1400년에 완성한 삼위일체(The Trinity)는 크기 142 x 114 cm의 목판에 템페라로 그려진 이콘으로 현재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화랑에 전시되어 있으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묘사한 작품이다. 왼쪽부터 성부, 성자, 성령이다. 삼위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성자와 성령은 성부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성부도 고개를 숙이셨다. 그에반해 오른쪽 서방교회의 삼위일체 아이콘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 사이에 수직적인 성령(비둘기)이 있다.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동방은 삼위론이나 삼위에서 출발하여서 일체성으로 귀착하는 반면에, 서방은 하나님의 일체성이나 하나의 신적 실체에서 출발하여서 위격으로 나아간다는 것..

삼위일체론적 성령론 국내도서 저자 : 유태화 출판 : 도서출판대서 2006.09.09 상세보기 제 4부 성령과 구원 제 9장 20세기의 토론 중생과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세령세례가 단회적인가 아니면 반복적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성령론과 관련하여 20세기 교회의 핵심적인 화두였다. 이것은 단순히 신학적 문제만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적 삶의 역동성 문제와 관련되면서 신학자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중생과 성령세례가 서로 다른 경험이라는 주장을 한다. 중생과 함께 성령의 내주가 시작되지만,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한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계기를 가져오는 첫 사건이 바로 성령세례라고 주장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웨슬리의 구원론의 구조를 상속한 것이..

32. 거룩한 삼위일체 [213] 위격들의 이름들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들의 이름보다 더 높은 단계에 이르는데, 이는 위격들의 이름들이 신적 존재의 단일성 가운데 존재하는 구별이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심위일체적] 계시는 구약 성경에서 시작한다. 구약 성경은 몇몇 독립적인 본문들에게서만이 아니라 유기적 계시 전체에도 삼위일체론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요소들을 포함한다. 먼저 ‘엘로힘’이라는 명칭은 계시의 하나님의 자기 생명의 무한한 충만 가운데 최상의 다양성을 포함한다. 이것은 창조 사역에서 곧 드러난다. 엘로힘은 자신의 말씀을 선언하고 자신의 영을 보냄으로 창조한다. 엘로힘과 세상은 이원론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객관적..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국내도서저자 : 이상웅출판 : 부흥과개혁사 2009.10.10상세보기1. 서론 영국의 존 웨슬리는 에드워즈의 칼빈주의 신학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에드워즈를 가리켜서 "그 선하고 현명한 사람... 그 위대한 사람"이라고 평가했고, 칼빈주의 감리교도인 조지 휫필드도 "에드워지씨는 견고하고, 탁월한 그리스도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뉴잉글랱드 지역에서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에드워즈는 비록 회중교회 목사였지만 미국 장로교회 목사들과 신학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가졌을 뿐 아니라 부흥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뉴라이트의 편에 서 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중요성을 확인 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그의 저술과 사상을 연구하여 왔다는 점이다..

신학은 결코 사변적 이어서는 안된다. 원래 신학이라는 용어는 ‘신’(theos)과 ‘학’(logia)의 합성어로 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었다. 즉 신학은 ‘말함’이라는 행동을 담고 있는 동사적 단어이다. 플라톤이 ‘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 확립하였고, 교회 안에서는 유스티누스가 처음 사용하였다. 유스티누스는 모세가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신학함이라고 하였고, 성령께서 성부와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부른 것을 ‘신학함’이라 하였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 하나님으로 선언하는 것이 신학함이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신학함이다. 오리게네스는 신학과 경륜을 처음으로 구분하였다. 경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고 신학은 인간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즉, 신학은 하나님..

동방교회의 신비신학에 대하여블라디미르 로스끼(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Лосский) 상세보기 14-16세기 서유럽의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않은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와는 사뭇 다르게 신학이 발전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신학과 신비가 서로 대립되지 않고 서로 보완해주며 통일을 이룬다. 다시 말하면 서방교회는 신학을 '논리'로 풀어냈다면, 동방교회는 '신비'로 풀어냈다.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상응하는 인간의 자세로 관상, 그리고 관상의 목적인 신화(theosis).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예전(liturgy)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양자 됨,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생각해 보자. 이 연합의 교리를 동방교회는 인간의 정화(catharisi)와 관상을 통해 삼위 ..

신학 :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 유해무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유해무 상세보기 신학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다.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함이다. 사람의 목적은 신학인데, 이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삼위를 하나님으로 부르는 찬송과 기도도 신학이다.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교의가 결국은 삼위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요 신학이다. 고대 교부들이 이해한대로 신학함에는 '학'이 아니라 '하나님'에 강조점이 있다. 신학의 원래 의미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으로서의 신학'... 신학은 예배여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서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신학이라는 용어가 '엄밀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

하나님을 설교하라존 파이퍼(John Piper) 상세보기 기독교 설교자의 임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도덕적인 격려나 심리적인 위로를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격려는 다른 이들도 해 줄 수 있씁니다. -존 파이퍼(하나님을 설교하라 19p) 우리가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더 나아가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는 모든 이유들이, 내 삶의 도움을 위해서라기보다,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구원을 베푸셨는지를 알고,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만 예배하며, 오직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삶이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