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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본문

신학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이참리 2020. 4. 30.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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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 - 유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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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다.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배함이다. 사람의 목적은 신학인데, 이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삼위를 하나님으로 부르는 찬송과 기도도 신학이다. 삼위일체론을 정립한 교의가 결국은 삼위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요 신학이다.

고대 교부들이 이해한대로 신학함에는 '학'이 아니라 '하나님'에 강조점이 있다.

신학의 원래 의미인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으로서의 신학'... 신학은 예배여야 한다.

우리가 서 있는 서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신학이라는 용어가 '엄밀한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래는 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었고, 고대 교회의 선배들이 이교적인 용어를 성경으로 교정하면서 삼위 하나님과 예배에 적용한 것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설교가 회복되고 그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다. .... "하나님을 말하는 자들이 신학자이다." 성령님과 진리로 예배하는 교회가 신학의 현장이며 참예배자가 신학자이다. 이런 원래적인 신학 위에 있을 때에라야 비로소 반성적 작업인 학문으로서의 신학도 가능하다. 그렇지 아니하고, 학문이라는 이념의 옷을 입은 이른바 신학은 진정한 현장에서 벗어나 있다. 신학의 울타리에서 나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신학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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