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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회 '신화'

이참리 2020. 5. 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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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삼위일체 - 안드레이 류블로프(1360-1430)

동방교회의 신비신학에 대하여블라디미르 로스끼(Владимир Николаевич Лосски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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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세기 서유럽의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않은 동방교회는 서방교회와는 사뭇 다르게 신학이 발전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신학과 신비가 서로 대립되지 않고 서로 보완해주며 통일을 이룬다. 다시 말하면 서방교회는 신학을 '논리'로 풀어냈다면, 동방교회는 '신비'로 풀어냈다. 서방교회와는 다르게 동방교회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상응하는 인간의 자세로 관상, 그리고 관상의 목적인 신화(theosis).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예전(liturgy)이 그 중심에 있다.

 

그리스도를 통해 양자 됨,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생각해 보자. 이 연합의 교리를 동방교회는 인간의 정화(catharisi)와 관상을 통해 삼위 하나님과 연합을 설명한다. 

 

엽합의 교리에서 동일 본질로서의 독생자와 양자로서의 자녀 됨을 구분하는 것처럼, 동방교회도 관상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본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본성과 일치 혹은 연합이 아님을 강조한다. 계시된 하나님은 동시에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이다.

 

한 편으로는 신화의 가능성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본질과 일치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브라드미르 로스끼는 이렇게 말한다. "신인 연합은 에너지들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 혹은 우리를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해 주는 은총을 통해 연합하는 것으로서, 이때 우리의 본질은 이 연합을 위해 하나님의 본질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우리는 은총에 의해 온전히 신이 되는 동시에 피조물로 남아 있게 된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을 통해 인간이 되셨지만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으로 남아 있었던 것과 같다." - 동방교회의 신비 신학에 대하여,111-112p

동방교회의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는 표현은, 성육신의 목적이 인간의 신화에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되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가 되는 신비주의는 아니다.

 

어찌 보면

동방교회가 말하는 신화와 서방교회가 말하는 성화는 동일한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논리의 모순을 가져다주는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의지와 은총이 서로 분리되거나 모순되지 않는다. 모순 속의 일치로 서로 동시적으로 작용하면서 신화를 실현시킨다. 이것을 "은총과 의지의 협력"(synergie)라고 부른다. 이것은 논리나 지성의 대상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브라드미르 로스끼는 이렇게 말한다. "동방의 부정 신학 전통에 충실한 이 교리는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용어들을 피함으로써 선한 행위들 안에서 은총과 우리의 자유가 조화를 이루는 신비를 표현해준다. 펠라기우스의 근본적인 오류는 은총의 신비를 합리적 차원으로 옮겨 놓으려 한데 있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맞선 그의 논쟁에서,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합리적인 태도에 똑같이 서 있고자 함으로써 그의 적대자의 모범을 따라갔다. - 동방교회의 신비신학에 대하여 - 237-238p

그간 동방교회에 관하여 너무나 무지하였다.

 

동방교회에서 말하는 정화(淨化)나 관상은 인간에게서 믿음을 발견하기 위해 마음을 정화시키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는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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