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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하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삼위일체 이해의 차이

이참리 2020. 5. 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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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회(왼쪽)과 서방교회(오른쪽)의 대표적인 삼위일체 아이콘

 

 

왼쪽 -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yov; 1360-1427)가 1400년에 완성한 삼위일체(The Trinity)는 크기 142 x 114 cm의 목판에 템페라로 그려진 이콘으로 현재 모스크바의 트레챠코프 화랑에 전시되어 있으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를 묘사한 작품이다. 왼쪽부터 성부, 성자, 성령이다. 삼위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성자와 성령은 성부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성부도 고개를 숙이셨다. 그에반해 오른쪽 서방교회의 삼위일체 아이콘은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 사이에 수직적인 성령(비둘기)이 있다.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동방은 삼위론이나 삼위에서 출발하여서 일체성으로 귀착하는 반면에, 서방은 하나님의 일체성이나 하나의 신적 실체에서 출발하여서 위격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통설이다. 

 

동·서방 교회의 삼위일체론의 특징

 

프랑스의 로마교 신학자 드레뇽(1831-1893)은 동·서방 삼위일체론의 특징을 최초로 구별하였다. “서방은 신적 본성의 일체성 위에, ……동방은 삼위의 교리 위에 자신들의 이론을 정립한다. ……서방은 ‘삼위는 단지 하나님 안에 있지 않고, 삼위가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이다’라고 말한다. 반면에 동방은 ‘신성은 단지 삼위 안에 있지 않고, 신성이 바로 삼위이다’라고 말한다. ……서방은 ‘삼위’를 한 하나님 안에서 말하고, 동방은 ‘한 하나님’을 삼위 안에서 말한다. 이로부터 서방 교회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보편화된 비판, 즉 신론에서 하나님의 본성의 일체성과 속성들을 먼저 다루고 나서 삼위론을 다룬다는 비판을 이해할 수 있다. 즉 구속 역사를 이루는 삼위가 아니라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을 먼저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위와 외적 사역들은 불가분리이다’라고 요약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은 ‘일체’와 ‘삼위’를 분리시켰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다. 일체성을 강조하지만 역사에서 삼위 사역의 경륜의 의미를 약화시키고, 결국 삼위일체론은 사변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이후의 서방 전통은 삼위에 앞서 일체를 말한다. 서방 삼위일체론의 이런 경향은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서방 교회의 삼위일체론 전통을 비판하는 이들이 대조시키는 삼위일체론은 카파도기아 교부들의 입장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비판가들에 의하면, 카파도기아 교부들은 위격에서 출발하여, 위격의 독특성과 신적 본성의 관계론적 일체를 강조한 반면에, 그들 뒤에 활동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입장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치치울라스인데, 그는 카파도기아 교부들의 어록에 근거하여 하나님 안에는 위격이 본성보다 앞선다는 명제를 발진시킨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에 원인(aitios) 개념을 도입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일체가 아니라 한 위격 곧 성부에게 있다고 보았다.” 즉 위격이 본체론적인 우선권을 지닌다는 이 입장은 위격이 아니라 일체성에 우선권을 두었던 헬라 철학을 전복한 셈이라는 것이다. 치치울라스는 특히 바실리우스를 인용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나 보에티우스의 개별주의적인 위격 개념을 반대한다. 하나님은 홀로 있지 않고, 삼위의 교제 중에 있다. “이 교제는 하나님의 본체가 아니라 위격의 결실인 자유의 산물이다. 즉 성부가 삼위인 것은 신적 본질이 무아지경에 빠졌기 때문이 아니라 위격인 성부께서 이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아들을 낳고 성령을 발출하신다.

 

치치울라스의 주장의 요점은 성부 하나님이 신 존재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성부로부터 성자와 성령이 존재하고 명명된다. 성부·성자와 성령은 위격적 동일성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신성을 뜻하는 하나님이라는 명명조차 하나님이 아니라 성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신적 본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존재이다. 즉 이 본체는 세 존재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치치울라스는 위격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철학이 제시하는 이 ‘존재의 방식’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이런 입장의 근거로 다시 바실리우스를 든다.

 

치치울라스에 의하면 고레고리우스는 한때 플라톤과 같이 하나님도 선과 사랑을 넘치게 분출시킨다고 보았다. ‘동등성’이 하나님의 존재 안에 필연성을 야기한다는 아리우스 파의 비난을 반박하면서 아타나시우스보다는 분명하게 성부가 신 존재의 원인이라는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기초하여 치치울라스는 381년 판 니케아 신조에서 ‘성부의 본질로부터’가 단순하게 ‘성부로부터’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치치울라스는 그레고리우스를 인용하면서, “‘유일한 하나님’은 성부이지, 아우구스티누스나 중세 신학자들이 주장하듯 본체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치치울라스는 성부의 위격이 신성의 유일한 원인이며, 위격은 존재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동방과 서방의 입장을 대립시키면서 서방의 입장을 비판한다. 그리고 많은 서방 신학자들조차도 이 견해를 채택하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원인(aitios)의 개념을 역사상 처음 도입하였다는 치치울라스의 주장이 정당한지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이 ‘원인’이라는 용어는 벌써 아타나시우스가 사용하였으며, 그에 앞서 오리게네스는 성부를 신성의 ‘원천 또는 원리’(pege: arche)라고 하였다. 단순하게 보아도 치치울라스의 주장이 정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서방의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미 성부를 신성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파도키아 교부들이 사용하는 원인 개념의 타당성 여부이다. 치치울라스는 “유일한 하나님은 성부이다”라는 발언을 신학자 그레고리우스가 하였다고 한다. 이 주장이 정당한가? 다른 두 교부인 바실리우스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성부를 원인자로 명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바실리우스는 하나님의 일체성 및 성자와 성령의 존재 방식뿐 아니라 존재의 원인이요 근원이 성부 안에 있다고 말한다. “창조를 위한 선한 것들의 공급의 근원인 성령님은 성자와 직결되어 있으며, 성자와 더불어 불가분리적으로 인지되며, 그의 존재는 그가 나오는 성부를 원인으로 삼는다.” 바실리우스는 자신이 삼신론을 주장한다는 비난의 부당성을 논증하려고 성부를 신성의 원인으로 주장한 것이다.

 

바실리우스와 그의 동생 닛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성자와 성령의 존재 방식뿐 아니라 존재의 원인과 근원을 성부에게 찾음으로써 하나님의 일체성을 정립하였다. 이들에게는 삼위의 ‘일체성’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삼위를 먼저 거론하고 일체를 뒤에 언급하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니케아 공회 이후에도 단원론과 종속설의 위험은 늘 있었다. 단원론에는 ‘한 하나님’을 고수하기 위하여, 양태론과 입양설이 있다. 단원설의 이 두 입장은 신성 안에 어떠한 구별도 거부한다. 양태론은 그리스도를 한 분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입양설은 그분을 한갓 인간으로 본다.  삼위일체론은 신성에서 성자의 독자성과 성부와의 구별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성자의 독자성을 말할 때에도 크게 보면 두 입장이 나온다. 성자와 성부의 구별을 말하여도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적이라고 보는 종속절과 성부와 성자의 구별성과 동등성을 동시에 말하는 삼위일체론이 다른 한편에 있다. 니케아 이전의 로고스론은 로고스인 성자의 수적(數的) 독자성을 확보하였지만, 단원론자들은 이 입장이 두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면서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이것은 이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에게 다신론의 인상을 풍겼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초기부터 이교의 다신론을 대항하기 위하여 구약을 따라 하나님의 일체성도 동시에 강조하였는데, 이때 ‘단원’의 개념을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삼위 하나님을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성부만을 제대로 신학하고, 성자와 성령은 미흡한 방식으로 신학하였다. 성부 하나님을 일체성의 근거로 삼다 보면 본의 아니게 종속설적인 경향을 지닐 수가 있었다. 이것이 다신론이나 영지주의와 투쟁 중에 있던 고대 교회의 비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이와 반대로 삼위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양태론의 위험도 늘 있었다. 이런 경향은 서방 교회, 주로 로마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양태론은 일체성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삼위의 위격은 존재론적으로 완전한 위격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 취하는 역할로 본다. 이런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라틴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는 ‘실재하는 개별적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페르소나(persona)를 사용하였는데, 동시대의 헬라 교부 히폴리투스는 헬라어 프로소폰(prosopon)으로써 같은 의미를 표현하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 신학의 주류는 히폴리투스나 테르툴리아누스의 입장이 이신론이나 삼신론에 빠질 것이라는 의심을 하였다. 이 두 사람은 일체성을 앞세우기보다는 삼위의 위격적 구별과 때로는 이 구별에 기초하여 삼위의 내적 동등성을 주장하였다. 히폴리투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영향을 받은 오리게네스는 삼위의 구별을 강조하였고, 이 때문에 양태론의 경향을 가진 서방 교회는 항상 그를 삼신론자로 의심하였다. 삼위일체론의 핵심 문제는 위격의 구별과 일체성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서방 교회 안에는 단원론 가운데 양태론의 위험이 상존하는 반면, 동방 교회 안에는 종속론적인 삼신론의 의심을 받는 이들이 있었다. 삼위일체론 논의는 하나님의 일체성에서 시작하여,  삼위의 동등성에 기초한 구별로, 그리고 다시 일체성의 확립으로 나타난다. 이런 과정에서 경륜과 신학의 구분이 등장한다. 서방 교회는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의 목적으로 로고스를 발출하시며, 창조의 완성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으로 보았다. 창조와 성육신에서 로고스가 성부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한다는 입장을 경륜이라 한다. 역사적 계시의 현장인 경륜에서 성자와 성령님은 성부의 뜻에 수종을 드는 종속적 존재로 보인다. 삼위일체론 논쟁은 과연 이런 역사적인 종속이 동시에 본질적인 종속인지를 해명해야 했다. 이것은 경륜과 대비되는 신학적 차원이다. 역사와 물질 창조를 열등한 것으로 보면 단원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육신과 구원의 고귀성을 말해야 삼위일체론도 건전하게 발전할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니케아 공회의 이전과 이후의 이런 신학적 흐름을 잘 대변한다. 그는 삼위를 말하기도 하고,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성자가 성부와 동등하며 동시에 독자적 위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영원한 성부이며, 성자는 성부의 본질로부터 영원히 출생하며, 동등 본질을 가지고 있다. 또 성자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는 오류도 경계한다. 성자가 성부의 본질과는 무관하게 무로부터 창조되었고 따라서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님 없이 성부나 성자에 참여할 수 없으며, 구원도 삼위의 협력 사역 없이는 얻을 수 없다. 오리게네스는 삼위의 구별과 동등성까지 말한다. 이렇게 그는 양태론을 정확하게 비판한다. 다른 한편으로 오리게네스는 종속설적 발언도 한다. 하나님은 유일자이시다. 위격에서 성자는 성부와 구별되며, 따라서 두 위격이지만, 생각의 연합과 의지의 조화와 일체성에서 한 분이다. 그는 위격의 구별을 앞세우다가 본질의 동등성을 배제하는 듯한 발언도 한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파생적이고 따라서 성부와는 다르기 때문에, 신이라 불리지만 성부만이 절대적 하나님이요, 성자는 상대적인 하나님이며 이등신(二等神)이다. 성자로서는 다른 피조물과 구별되지만, 출생자로서는 비출생자인 하나님과 구별된다. 성부의 행위는 존재 전체에 해당되지만, 성자는 이성적 존재에, 그리고 성령의 행위는 성화를 받는 자들에게로만 국한된다. 이것을 오리게네스는 삼위 내의 ‘순서’라 부른다. 

 

오리게네스가 삼위 하나님을 말할 때, 구원을 베푸는 세례는 지고한 삼위일체의 권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불러 완성된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이 세례 명령으로부터 교회는 ‘진리의 잣대’와 ‘신앙의 규범’을 형성하였다. 세례와 이에 기초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백은 신학적 작업 이전에 삼위의 일체와 구별을 고백한다. 문제는 삼위의 구별과 일체성을 표현하는 방식과 언어이다. 오리게네스는 구별과 일체성을 표현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후 동방 교회 안에는 성자의 영원성을 고백하면서도 종속설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성자를 아예 인간으로 보는 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두 다 오리게네스를 권위로 인용한다. 

 

오리게네스의 제자 디오니시우스는 자기 관할인 리비아 지역에서 세력을 얻기 시작한 양태론을 논박했다. 그가 시벨리우스주의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하여 성부와 성자의 구별을 강조한 서신이 반대파에 의해 로마의 감독 디오니시우스에게까지 전달된다. 디오니시우스는 그가 성부와 성자의 구별을 앞세우면서 성자의 영원성과 동등성을 훼손하고 결국은 피조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게다가 한 원리(principium, 근원)를 세 위격으로 분리하여 결국 삼신론에 빠졌다고 비판한다. 디오니시우스는 자신이 성자의 영원성을 주장하지만, 본질 동등성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삼위의 구별이 본질의 일체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루스 감독도 성부만이 지존하며., 성부께서는 성자를 영원부터 출생시킴으로써 항상 성부이심을 강조한다. 그는 성자의 위격을 구별하여 양태론뿐만 아니라 아리우스의 입장을 정죄하지만, 성자가 지닌 태어나심이라는 위격적 특성만은 성부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한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루스 감독을 양태론자로 공격하고 자신은 그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아리우스는 출발점 자체가 전혀 달랐다. 그는 성자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입양설적인 단원론을 주장했다. 아리우스 이전에도 안티오키아의 감독이었던 파울루스가 입양설을 주장했다. 파울루스는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에 결코 성부와 동등 본질일 수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만약 동등 본질이라면 결과적으로 세 본질을 말해야 한다는 식으로 동등 본질성을 거부한다. 

 

케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도 성부는 절대적 초월자로 만유의 원인자임을 강조한다. 말씀은 영원 전에 성부로부터 출생하여 위격적으로 성부와 구별되지만, 창조를 위한 중보자로서 절대적 초월자와 직접적인 교제는 가질 수 없다. 성자는 성부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이라는 칭호에 합당하지만, 성부만이 비출생자로서 성자보다 선행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성자의 영원 출생은 있을 수 없다. 성령도 독자적 위격이지만, 삼등신(三等神)이요 셋째 능력이요 첫 원인에서 보자면 셋째라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리우스가 등장한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초월성과 무원인적인 원리라는 독특성을 전제로 삼아 이런 하나님이 자기의 본질을 타자에게 수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성부가 무로부터 성자를 창조하였다는 것을 고수하기 때문에, 성자가 성부의 유출이라거나 성부의 본질에서 동등하다는 것은 신성을 물화하는 것이라고 하여 거부한다. 성자는 피조물로서 시작의 시점을 지니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러므로 성자는 성부에 관한 직접적인 지식이나 계시를 갖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성자는 타락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변적이라고 말한다. 성령을 독자적 위격이라고 부르지만, 성자처럼 성부의 본질과는 전혀 동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니케아 공회의(325)는 성자를 단순히 인간으로 본 아리우스를 정죄하고, 성자는 성부와 본질상 동등함을 고백한다. 첫 니케아 신조는 성자가 피조물이 아니라 출생하는 분이시며, 이등신이 아니라 참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니케아 공회의는 아리우스 파를 출교시킴으로 일단 큰 문제는 해결했지만, 또 다른 불씨를 안고 있었다. 즉 성자가 “성부의 본질로부터” 출생하고, “성부와 동등 본질이다”라는 고백의 의미에 대한 이해이다. 즉 이 용어가 성자의 본질 동등성만을 지시하는지, 아니면 이와 더불어 신성의 일체성까지를 담고 있는지가 논쟁의 핵심이 될 것이다.

  니케아 공회의 이후 서방 교회는 본질 동등성을 수용하였지만 동방 교회 안에서는 소수파만이 이를 따랐다. 콘스탄티우스 2세는 동등 본질파와 비유사파를 경계하고 유사파를 지원하였다. 그의 개입과 간섭으로 제3차 시르미움 회의(357), 니케 회의(359)와 콘스탄티노폴리스 회의(360)는 유사파 고백을 결정한다. 다행히 로마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가 니케아 신조를 인정하였고,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공회의를 소집하여 감독들이 고백을 제정비하고 교의를 확립함으로 혼란을 정리하게 하였다. 

 

본질 동등성에 기초하여 성부와 성자의 일체성을 강조하고 성부와 성자의 구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양태론에 빠질 위험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니케아 공회의에 참석했던 감독들 중에 이런 위험에 빠진 이들이 있었다. 마르켈루스는 신성은 원래 단원이었는데, 능동적인 확장의 방식으로 삼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로고스는 하나님의 능력인데 세상 창조의 목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가 그 목적이 완성되는 종말에는 애초와 같이 하나님 안에 합류한다. 하나님의 단원성을(일체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성자의 위격을 부정하고, 하나님은 창조 전과 창조의 완성 후에 성부만이 있다는 그의 주장은 사벨리우스적이다. 


로마 제국의 서방을 지배하던 콘스탄스 황제는 434년 사르디카(현재의 소피아)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하였다. 아타나시우스와 마르켈루스도 참가한 그 회의는 성자가 성부와 함께 통치하심을 고백하고, 이 통치에 시작이 있다는 아리우스 파의 입장과 계시의 경륜에서만 성자가 통치하다가 종말에는 그의 통치가 끝난다는 마르켈루스의 입장을 다 정죄한다. 또 삼위가 전혀 다르고 구분된 위격들이라는 아리우스 파의 주장을 거부하고, 니케아의 고백 문구를 따라 세 분은 ‘한 위격’(mia hypostasis)을 가졌다고 고백한다. 여기에 비로소 신성의 일체성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이 처음 등장한다. 즉 삼위의 일체는 오리게네스가 주장하듯, 상호 조화나 의지의 일체성이 아니라, 위격의 일체성임을 고백한다.

 

그런데 아타나시우스는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사르디카 고백에 나오는 용어 ‘한 위격’의 불충분성을 지적한다. 성부는 본질상 영원토록 성자를 출생시키기 때문에, 성자의 출생은 영원하다. 출생은 하나님의 본래 고유한 사역이지, 성부의 의지의 결과가 아니고, 성자가 피조물과 같은 존재도 아니다. 출생은 또 영원하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의 구별도 영원하며, 마르켈루스의 식으로 경륜에만 속하지도 않는다. 성자를 본 자는 성부를 보았다는 말씀은, 성자의 본질이 성부의 본질과 같으며, 모든 면에서 성부와 유사하다는 뜻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초기 작품에서 본질 동등성을 강조하였을 뿐, 신성의 일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한다. 그는 358년경 저술한 『아리우스 파 논박』 이후부터 ‘유사성’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니케아 신조에서 유사성이 아닌 본질 동등성을 사용한 것은, 유사성은 본질이 아니라 습관이나 자질에 해당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성자가 성부와 가진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서, 본질 동등성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본질과 위격을 구별해야 하는 당위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양자를 구별할 수 있는 이 용어들을 여전히 갖지 못했다.

 

서방 갈리아의 프와티에의 감독 힐라리우스는 356년에 소아시아 프리기아 지방으로 추방을 당하여 그 지방의 수도인 안키라의 감독 바실리우스와 교제하였다. 이 때 서방 교회의 갈리아 회의(358)가 동방 신학과 정책을 알기 위하여 그에게 공식적으로 질의서를 보냈는데, 그는 359년 초에 답신을 작성한다.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하나인 것을 진술하려는 정통 신앙인은 이것을 출발점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한 본질을 단언하기 위하여 먼저 성부는 비출생자이시고 성자는 출생하시고, 성자는 위격적 존재를 성부로부터 취하며, 권세와 영예와 본질에서 성부와 같으며, 자기 존재의 원리인 성부께 종속적임(Patri subjecrus est, ut auctori)을 말하면 안전할 것이다.” 이것은 서방 전통이 본질 동등성에 기초하여 안고 있는 양태론에 대한 강한 경고를 담고 있다. 즉 아리우스와 양태론을 거부하면서도 본질 동등성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힐라리우스가 동방과 서방을 잘 비교하고 있지만, 그 정리에도 한계는 있다. 즉 그는 성자의 본질의 원인은 성부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성자 출생의 본질은 성부의 본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비록 그는 성부와 성자의 본질에 선행하는 어떠한 본질도 없다고 확인하지만, 그에게도 여전히 본질과 위격을 구별할 수 있는 용어 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타나시우스의 공식적인 입장은 362년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나온다. 그는 성자의 독자적 위격과 존재를 인정하고 삼위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화해의 자세를 견지한다. 즉 삼위를 말하는 이들은 아리우스 파와 같이 전혀 상이한 세 위격을 말하며 삼신을 주장한다는 오해를 받지만, 직접 문의한 결과 그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신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타나시우스는 지금까지 주로 성자의 신성을 해명하고 변호하였는데, 지금부터는 성령님도 본격적으로 신학하는 계기를 맞는다. 아타나시우스는 359/360년경에 이집트 트무이스의 감독 세라피온에게 답신을 쓰면서, 성자의 신성을 논증한 꼭 같은 방식으로 성령님도 동등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논증한다. 성령님은 무로부터 온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성화와 갱신의 영이시다. 성령님은 삼위에 속하시고, 신격화시키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동등 본질에 참여한다. 성부는 만사를 성령님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성취하신다. 즉 삼위는 동일한 사역을 행하신다. 곧 삼위는 불가분리이며 스스로 한 분이시다.

 

아타나시우스가 말년에야 비로소 주장하기 시작했지만, 성령님의 본질 동등성을 확립하는 일은 다음 세대의 과업이었다. 대바실리우스도 372년까지는 성령님의 신성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피하였다. 그러나 세바스테의 에우스타니우스와 결별하는 다음 해부터 성령님에 대해서 보다 명백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375년에 쓴 『성령론』에서는 성령님께 성부와 성자에게 돌리는 동일한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성령님의 본질 동등성은 말하지 않는다.

 

이들과 달리 신학자 그레고리우스의 입장은 아주 분명하다. “성령님이 하나님이신가? 실로 그러하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본질이 동등하신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물론 동등하다!” 그렇다면 성부와 성령님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자와 성령님의 관계는 무엇인가? 성부는 성자 외에 또 다른 아들인 성령님을 가지신 것인가?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성자의 원인 방식과 성령님의 그것을 구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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