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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칭의론(3,4장) - 앨리스터 맥그래스

이참리 2020. 5. 25.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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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칭의론
국내도서
저자 : 앨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 / 한성진역
출판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0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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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칭의론 (3-4장)

기독교 교리 칭의론의 역사 - 앨리스터 맥그래스

 

제 3장 개신교 : 종교개혁 시대의 칭의 논쟁

 

1. 종교개혁 칭의 교리의 전령?

종교개혁 교회의 가르침과 초창기 시대 칭의론 사이의 역사적 연속성을 둘러싼 질문은 날카로운 압력이 된다. 로마 가톨릭 대적자들은 종교개혁의 가르침이 신학적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부세(Bossuet)는, 종교개혁자들이 칭의론에서 가톨릭 교회의 일반적 가르침을 심각히 수정했으며, 이러한 수정은 자신들이 정통적이며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사실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종교개혁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첫째, 칭의에 대한 종교개혁의 가르침과 어거스틴의 가르침 사이에 동일성을 강조했다. 둘째, 부패한 공식 교회의 가르침과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의 가르침이라는 이중적 상황에서 후자의 가르침이 종교개혁 시대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종교개혁의 전령’이 존재했다고 기술된다. 

 

1530년에서 1730년 사이 칭의의 성격에 대한 개신교적 인식의 특성은 다음의 세가지 항목이다.

1. 칭의란 신자들이 의롭게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신자들이 의롭다는 법정적 선언으로 정의되며, 그들의 본성보다 그들의 상태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2. 칭의와 성화 또는 중생 사이에 정교하고 조직적인 차이가 만들어진다.

3. 칭의의 공식적 원인은 인간이 타고난 것, 또는 인간 안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외래적 의, 인간에게 전가된 의라고 정의된다. 그러므로 칭의에 있어 하나님의 심판은 분석적이라기보다 종합적이다. 

 

종교개혁은 중세 후기 사상의 기성 조류 중 하나인 급진적 반-펠라기우스주의와 연속성을 보인다. 중세 후기 신학의 여러 흐름을 형성했던 수많은 신학 조류의 하나와 밀접한 유사성을 보인다. 종교개혁의 초기신학에 중세 후기 구원론의 근본적 전제들이 유입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연속성은 칭의의 성격보다는 칭의의 양식과 주로 연결되어 있다. 중세기 내내 의화란 인간이 의롭게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으로, ‘성화’와 ‘중생’ 개념을 포괄한다고 이해되었다. 유스티피카레(Iustificare, 의롭게 하다)는 유스툼 파케레(iusyum facere, 의롭게 만듦)로 이해되었다. 

개신교가 칭의와 중생을 구별한 중요성은,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서구 신학 전통 안에 본질적인 지적 불연속성이 도입되었다. 종교개혁 칭의 교리의 핵심적 요소는 칭의와 중생을 의도적으로, 체계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개념적 구분이다. 기독교 교리사에서 그 누구도 이런 개념적 구분을 알지 못했다. 종교개혁의 칭의의 성격(양식과는 반대 의미) 인식은 진정 신학적 새로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의’에 대한 루터의 발견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에게 속한 의라기 보다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인 의.

2.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난 의.

3. 인간의 예상과는 모순되는 의.

세 요소 중 첫 번째는 의문의 여지없이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의 개념의 중요한 측면과 일치한다. 다음 두 요소는 어거스틴과 구분된다. 루터에게 있어 ‘하나님의 의’란 십자가에서 총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며, 계시가 이루어지는 양상에 대한 인간적 선입견과 예상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드러났지만, 모든 것이 인간의 예상과는 달리 모순적이다. 계시된 신적 속성의 특징에 대한 루터의 이해가 바로 이것인데, 이것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기저를 형성한다.

 

3. 루터의 칭의 신학 성숙기

칭의 과정에 대한 루터의 독특한 초기 이해의 열쇠는 인간론이다. 루터는 육과 영 사이의 바울적 반정립은 인간론적이 아니라 보다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반정립의 인간론적 접근은 육은 '육적인' 즉 인간성의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측면이고, 영은 하나님께 향해가는 방향성인 보다 고상한 인간적 성질을 나타낸다. 루터에게 전인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을 한꺼번에 그리고 동시에 섬기므로, 이중적인 종속성 아래에 존재한다. 한 사람이자 같은 사람이 영적이며 육적이고, 의로우면서 죄인이며, 선하면서 악하다. 바로 이러한 인간론에서 신자는 의인이자 동시에 죄인이라는 유명한 루터의 말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인간론에 따라 신자와 불신자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대답은 하나님 앞에서 또는 사람 앞에서 전인이 드러나는 지시적인 틀 안에 있다. 신자는 사람들 앞에서의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의인이며, 그렇다고 간주된 의인이다. 루터에게 복음은 모든 인간적 의를 파괴시킨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들에게 구원을 위한 재료가 전무함을 알게 될 운명이며, 따라서 구원의 재료를 외부로부터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 의롭게 하는 의의 핵심은 붙잡는 믿음, 즉 그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며, 우리의 죄가 그의 것이 되도록,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고, 그에게 딱 달라붙게 하는 믿음이다. 루터는 후기 개신교와 관련된 칭의와 성화 사이의 구분을 만들지 않았으며, 되어가는 과정으로 칭의를 다룬다. 그러므로 칭의는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소망 속에서 그들의 의의 최종 완성을 기다린다.

 

칭의에 있어 루터와 어거스틴 사이의 관계는 다음처럼 요약 가능하다. 첫째, 루터와 어거스틴 모두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의로 해석한다. 둘째,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의가 인간적의 의와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인간적인 의 개념의 기초를 이루기 때문이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의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인간적인 의 개념과 상충된다. 루터의 칭의 교리는 노예 의지 개념에 기반을 둔 반면, 어거스틴의 교리는 치유하는 은총의 작용을 통해 해방된 자유 의지가 될 수 있는 노예가 된 자유 의지에 기반을 둔다. 셋째, 루터는 칭의 이후 노예 의지의 해방을 예상하지 않았다. 인간 의지의 노예성을 인간의 죄성보다는 인간의 피조물 됨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넷째, 루터와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 발전 그리고 연이은 완성을 포함하는 총체적 과정으로 칭의를 이해하는 데 일치한다. 다섯째, 어거스틴은 신자가 칭의 시에 의로워지는 것을 신적 생명과 존재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반면, 루터는 칭의 시에 인간성이 의롭게 됨을 인정하는 데 주저한다. 여섯째, 루터와 어거스틴은 상당히 다른 인간론적인 전제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과 죄 이해에 중대한 결과를 발생시킨다. 일곱째, 루터는 로마서5:1이나 관련 구절 등 사도 바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믿음에 의한 칭의"라는 용어를 주로 언급하여 신적 구원의 우위성을 표현한다. 어거스틴은 에베소서2:8의 이미지를 채택하여 '은총에 의한 구원'으로 동일한 개념을 표현한다. 그리므로 루터와 어거스틴의 관계는 분명 양면적이다. 분명히 루터의 사고에 어거스틴적 요소가 있지만, 동시에 어거스틴과 두드러지게 갈라선 요소들(특히 외래적 그리스도의 의 교리)도 있다.

 

4. 1516년~1580년 초기 루터파의 칭의론

칭의 논쟁들은 세 개의 주요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즉 칭의의 객관적 근거(오시안더 논쟁과 스탄카리 논쟁), 칭의 후의 선한 행위의 필요성(반유명론 논쟁과 메이어 논쟁) 그리고 칭의의 주관적 적용(신인협력설 논쟁과 단일설 논쟁)등이다.

 

1) 칭의의 객관적 근거 : 오시안더 논쟁과 스탄카리 논쟁

멜랑크톤의 동시대 비평가 중에 안드레앙스 오시안더가 있다. 오시안더는 구원하는 의는 그리스도 안에 필수적으로 내재하는 의일 뿐이며, 그의 인성보다 그의 신성에서 솟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칭의는 그리스도의 필수적인 의의 주입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프란체스코 스탄카리는 정반대 입장을 주장하였다. 칭의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류시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며, 논리적 모순(그리스도의 신성이 중보자 역할과 위반자 측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 같은)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인간 칭의의 객관적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인성이라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 획득된(본질이 아닌!) 의가 칭의의 기초로서 인류에게 주입되었다. 

 

2) 칭의에서 행위의 역할: 반-율법주의 논쟁과 메이어 논쟁

루터는 칭의에서 믿음의 우선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 선한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520년 선행에 관한 설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이 가장 우선이며, 최고이며, 가장 고귀한 선행이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그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인해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여진다'라고 덧붙인다. 메이어는 1522년의 논문 [암스도르프의 니콜라우스에 대한 답변]을 통해 전적으로 오직 믿음의 칭의 원리에 헌신했다. 그럼에도 그는 선행이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루터가 가르쳤음을 확신했다.

 

3) 칭의의 주관적 전용: 신인협력설과 다원론 논쟁

인간은 칭의에서 철저히 수동적이라는 루터의 주장은 특히 명제 제36조에 대한 변호와 [노예 의지론}에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멜랑크톤은 루터에 동의하지 않는다. 칭의는 하나님의 말씀, 성령 그리고 인간 의지의 능력 등 세 가지 원인적 요소에 기인한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이끌리지 않을 수도 있다.

 

1577년 3월 작성된 일치 신조는 루터의 칭의 교리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다. 여기어 칭의가 명백한 법정적 용어로 정의되며, 의롭게 하는 의로 간주해야 할 것은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임을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모두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중보자적인 의에 의한 칭의에 찬성하면서, 오시안더와 스탄카리의 가르침이 거부되었다. 메이어 논쟁은 신조의 4항을 통하여 해결되었다. 선행은 선행을 명령 받았다는 점에서 의무적이며,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감사의 표현으로 선언되었다. 그러나 선행이 구원을 위한 의무나 필수 사항은 아니다. 신인협력설과 단원론 논쟁은 신인협력설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정죄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5. 1519년~1560년 초창기 개혁신학

 

인문주의가 초기 개혁신학에 미친 영향은 막중하다. 칭의 교리에 대한 에라스무스의 전반적인 접근은 근본적인 색채에 있어 도덕주의자의 접근이었다. 에라스무스는 성경의 도덕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이를 통해 구약 성경에서 신약성경으로 복음의 법이 계속됨을 제시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초기 개혁주의 전통과 루터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점 안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부써와 츠빙글리에게, 유대 율법은 폐지되어 버린 나쁜 것이 아니라 이제 충족된 선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점에서 츠빙글리와 부써에 대한 에라스무스의 영을 고려해 볼 만하다. 루터의 경우 사람이 어떻게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칭의 교리에 대한 그의 강렬한 선입견으로 연결된 반면, 츠빙글리의 관심사는 주로 교회의 개혁과 재생, 달리 말하면 기독교 르네상스라는 인문주의적 비전이었다.

 

요하네스 외콜람파디우스의 저작에도 칭의에 대한 비슷한 도덕주의적 접근을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천의 삶에서 중생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강력한 강조는 사람의 칭의를 사람의 중생에 종속시켰다는 것이다.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를 향한 신적 사랑을 극대화시켜, 사람들을 도덕적인 경지로 이끌려는 의도였다. 마찬가지로 하인리히 블링거는 칭의란 의의 전가가 아니라 의의 실현이라고 주장했다. 후기 경건주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칭의는 그들의 도덕적 행위에 의해 승인받는다.

 

초창기 개혁교회 안에서 칭의 교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제시는 마틴 부써의 설명이다. 부써는 이중 예정 교리를 발전시킨다. 인간의 죄가 용서되고 의가 그들에게 전가되는 '첫 번째 칭의' 후에, 인간이 의롭게 만들어지는 '두 번째 칭의'가 따른다. 부써는 첫 번째 칭의의 법정적 개념을 유지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를 위해서는 두 번째 칭의에서 선행이 드러나야 함을 강조한다. 비록 인간의 첫 번째 칭의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 일어나지만, 두 번째 칭의는 그들의 행위에 근거해서 일어난다. 부써는 전적으로 거저 주어지는 죄인의 칭의와 곧이어 그들에게 부과되는 도덕적 의무 사이의 확고한 신학적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했다. 성령이 이끄시는 의와 선행은 하나님의 시각 앞에서 인간의 공로 없는 수용의 가시적 증거로 나타난다. (예정 - 선택 - 소명 - 칭의 - 영화)

 

초창기 개혁주의 칭의 교리의 발전에 있어 가장 커다란 공헌은 존 칼빈에게 돌려져야 한다. [기독교 강요]의 후속판에서 인간은 칭의를 통해 의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며, 그 자신의 의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외부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그렇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그들이 마치 의로운 것처럼 받아들여질 때 자신이 의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신적 수용을 위한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에, 칭의 시 그들의 의는 언제나 그들밖에 있으며, 우리의 의는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칭의 시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인격적인 연합이 이런 요소에 포함된다. 칼빈은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연합 교리가 칼빈의 칭의 이해의 핵심이 된다.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연합되면서 일어나는 두 가지 결과가 칭의와 성화이다. 이 둘은 구별되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따라서 부써가 '경건한 자의 칭의' 또는 '두 번째 칭의'를 말하는 지점에서, 칼빈은 성화를 발한다.

 

(부써 : 선택 - 불경건한 자의 칭의 - 경건한자의 칭의 - 영화)

(칼빈 : 선택 - 신비적 연합 - 칭의/성화 - 영화)

 

칼빈 칭의 이해의 강점은 칭의가 이제 기독론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쯔빙글리와 부써는 칭의를 성령의 재생시키는 사역을 통한 신자의 중생에 의존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칼빈은 신자들의 그리스도로의 접붙임과 결과 신자들에게 동시적으로 그리고 분리되지 않고 수여되는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호의로서 칭의와 성화를 이해한다. 성화는 칭의의 결과가 아니다. 칭의와  성화 모두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결과다. 칭의에 관한 질문은 본질적으로 더 광범위한 질문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제 4장 가톨릭주의: 트렌트 회의의 칭의

 

1. 가톨릭주의 내부의 전개, 1490년~1545년

그로퍼(Gropper)와 콘타리니(Contarini)는 1536년~1541년 어간에 벌어진 복음주의-가톨릭의 재화해 시도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 시도는 트렌트 회의의 이슈로 등장했다. 

 

가스파로 콘타리니(Gasparo Contarini)는 파올로 쥐스티니아니(Paolo Giustiniani)가 포함된 파두아의 학식 있는 인문주의자 그룹의 일원이었는데, 이들은 구원의 획득 수단에 대해 논의했다. 콘타리나에게 십자가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인간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죄에 대한 대속으로 충분한 것 이상이었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근거하여 의롭게 되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인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콘타리니-쥐스티니아니 사이에 교환된 서신은 트렌트 시대 직전의 칭의 교리에 관한 교리적 혼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쥐스티니아니는 구원받으려면 속세를 떠나 최상의 엄격한 삶을 살아야 된다고 확신한 반면, 콘타리니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으면서 세상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루터와 콘타리니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비록 두 사람 모두 믿음의 역할과 그리스도의 ‘외래적’ 의를 강조했지만, 콘타리니에게는 루터의 독점적인 오직 믿음주의와 외래주의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았으며, 믿음에 대한 적합한 강조가 칭의에서 은총을 배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떤 면에서 칭의에 대한 콘타리니의 후기 견해, 특히 1541년의 견해는 1538년 [엔키리디온](Enchiridion)을 출판한 퀼른 신학자인 요하네스 그로퍼(Johannes Gropper)의 입장과 평행선을 이룬다. 이 저작은 흔히 이중 의(duplex iustitia)에 기초하여, 이중 칭의 교리를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중 의'개념은 중세 초기의 칭의 논의에서도 발견되는데, 주입된 의와 획득된 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칭의는 주입된 의에 기초하여 발생하고, 이어서 획득된 의로 정립된다. 그로퍼는 칭의의 공식적인 원인으로 기능하는 의와 곧이어 은총과의 협력을 통해 신자 안에서 발전한는 의 사이를 주의 깊게 구별한다. 

 

[엔키리디온]에서 '인간의 칭의에 관해서'(De iustificatione hominis)로 이름 붙여진 단원은 칭의를 두 가지 요소로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즉 죄의 사면과 마음의 내적 재생이다. 그로퍼에게 칭의란 개인의 내적 재생과 꼼짝할 수없이 연결되어 있다. 가톨릭의 전통적 칭의 해설과 그로퍼의 견해가 분명히 달라지는 지점은 그가 전가된 의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다. 그로퍼는 의의 전가를 신자의 재생을 통한 신자의 신적 수용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퍼와 중세 전통은 연속성을 이룬다. 비록 그로퍼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칭의 이해 사이의 중요한 연속성의 부분을 드러냈지만, 트렌트 회의 이전의 언어로 '이중 칭의'의 적합한 의미를 설명했다고 여길 수 는 없다.

 

그로퍼의 [엔키리디온]이 [라티스본 헌장]의 제5조의 기초가 된 것으로 보이며, 레겐스부르크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에 전개된 논의의 기반이 되었다. 부써, 콘타리니, 그로퍼 사이에 칭의 문제에 관한 개인적 일치가 보인다 하더라도, 루터주의와 가톨릭주의 사이의 기구적 일치라는비중은 없었다. 레겐스부르크의 실패는 상당한 정치적 결과를 야기 했으며, 결국 '복음주의'로 알려진 이탈리아 개혁 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으로 이어졌다.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이탈리아 교회 안의 자생적인 개혁 운동을 언급하는 것으로 널리 사용된다. 이 운동과 관련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유익에 관한 유용한 에세이]에서 오직 믿음 칭의 교리를 인정한다.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의 것이 되며,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기초하여 하나님께서 신자를 의롭다고 여기신다. 그러나 비록 이 저작은 오직 믿음 칭의 교리를 개진하고 있지만, 언어적 공식은 유지하면서도 믿음 개념을 사랑에 의해 작동되는 믿음이라는 유연함을 가지고 이해했다. 스스로 의롭게 되는 믿음은 사랑을 통해 활성화되는 믿음이며, 루터와 관련된 신용상의 믿음 개념과는 대조를 이룬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중재하려던 레겐스부르크의 실패는 복음주의 분파의 일시적 일탈이 영구적 분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회를 향한 가톨릭의 교의를 선포할 필요성을 강용했다. 이처럼 긴급히 요구되던 가톨릭 교리에 대한 정의를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트렌트 회의가 소집되었다.

 

2. 칭의에 관해 논쟁 중인 트렌트의 신학 학파들

1546년 6월 칭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모인 트렌트 회의의 논점은 다양한 가톨릭 신학 학파들 사이의 오랜 논쟁의 해소가 아니라, 개신교의 도전에 직면하여 가톨릭의 칭의 정의에 대한 일치된 합의의 도출이어다. 에두와르트 슈타케마이어는 1936년 중요 연구에서, 세 가지 신학 학파가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아퀴나스 학파, 스코투스 하파, 그리고 어거스틴학파이다. 

 

아퀴나스 학파의 부흥은 15세기 카프레올루스의 주도하에 일어났다. 그는 아퀴나스의 칭의 교리에 있는 어거스틴적 요소를 강조하고자 리미니의 그레고리의 반-펠라기우스 저작을 맹렬하게 끌어들인다. 그 결과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결합에 기반을 둔 칭의 신학이 가톨릭 서클들 내부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칭의에 관한 의사진행에서 특히 두드러졌던 사람들은 프란시스코 신학자들이었다. 이 학파의 안드레 데 베가(Andres de Vega)는 그의 [칭의론 소고]에서, 적합한 공로로 칭의가 되는 데 있어 인간의 기질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변호한다. 즉 타당한 공로의 부정과 은총에 선행하는 적합한 공로의 인정이다. 중세 프란시스코 전통 전부가 칭의를 향한 기질이 공로적인 적합성이라고 가르쳤음을 상기할 가치가 있다. 슈타케마이어는 프란시스코파의 전반적인 가르침을 '스코투스주의'로 지칭하였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대표단은 폭넓은 신학적 범위에 자신들의 입장을 기초하고 있다. 그들을 '스코투스 학파'라 부르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으며, 부적절하다.

 

트렌트의 칭의 토론에 참여한 어거스틴 종단의 신학자들은 대개 신학보다는 사람에 따라 투표한 것으로 보인다. 어거스틴 종단의 전반적인 특징을 보이면서, 트렌트의 칭의 의사 기관을 대표했던 통일적인 사상 '학파'가 있었다는 제안은 불가능하다.

 

3. 트렌트의 칭의 논의들

첫째, 칭의는 단지 죄인의 사면인가 아니면 인간 안에 있는 은총의 행위를 통한 내재적 성화를 포함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 둘째, 믿음과 선행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무엇인가? 프로테스탄트의 오직 믿음 칭의 교리에 대한 신중한 답변이 대답으로 요구되었다. 셋째, 의지의 수동성을 인정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일반적인 경향에 비교할 때, 칭의에서 인간 의지의 능동적 역할의 정확한 성격은 무엇인가? 넷째, 세례 및 고해에 있는 죽은 자에 대한 성례와 칭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다섯째, 신자는 자신들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지닐 수 있는가? 끝으로, 칭의를 향한 인간 스스로의 기질이 필요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 기질이 공로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칭의의 성격에 관한 일반적인 합의가 1546년 7월 24일 자인, 칭의 선언문 초안에 반영된다. 첫째, 죄인은 사실로는 여전히 죄인으로 남지만, 오직 그렇게 간주됨 또는 전가의 문제를 통하여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견해는 거부된다. 칭의란 단지 사람이 의롭다고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되어가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정의된다. 둘째, 칭의가 의의 수여가 아닌 오직 죄의 사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이 정죄되었다. 셋째, 칭의에서 신자들에게 수여되는 의는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가 획득한 의라는 견해가 정죄되었다. 이 진술은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데, 전자는 칭의의 공로적 원인으로, 후자는 공식적 원인으로 이해되었음을 가리킨다. 첫 번째 칭의에 이어지는 행위의 필요성에 대한 일반적 합의는 초기 논의에서도 분명했는데, 결국 오직 믿음주의에 대한 정죄로 귀결되었다. 

 

1546년 11월 11일 논의를 위해 포고문 중 8번째 장이 수정되어 작성되었고, 칭의의 공식적인 원인에 대한 어떠한 모호성도 피했다. 칭의에는 오직 한 가지 공식적 원인만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며, 하나님은 그의 눈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신다. 이처럼 분명한 진술은 칭의의 유일한 공식적 원인은 하나님의 의라는 효과를 불러일으켜, 같은 날 열린 총회에서 이에 따른 정의 그대로가 승인되었고, 결국 칭의에 관한 최종 포고문 안에 통합되었다. 

 

칭의의 공식적 원인에 관한 질문은 트렌트에서 논의된 내용들 중에 가장 논쟁적인 이슈이기도 했다. 또 다른 하나는 구원의 확실성으로, 개혁자들, 특히 루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이 문제에 관한 중세의 합의에 의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은 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이는 트렌트와 루터교 사이에 큰 차이점이었다.

 

트렌트 회의는 칭의의 원인과 은총의 확실성 문제의 해결과 함께, 포고문의 마지막 장들 안에 포함된, 가톨릭의 칭의 가르침과 관련된 확장된 발표를 진행, 개신교의 오류에 대한 법규를 통해 구체적인 정죄를 할 수 있었다.

 

4. 칭의에 관한 트렌트 회의의 포고

포고문의 최종 배열은 초기 논쟁 동안 등장했던 세 가지 ‘칭의 단계’를 반영한다. 처음 아홉 장에서 죄의 상태에서 의의 상태로 가는 사람의 처음 변이가 묘사되는 ‘첫 번째 칭의’에 대해 논의된다. 다음에 일단 의롭게 된 사람이 어떻게 의 안에서 자랄 수 있는가 하는 ‘두 번째 칭의’를 다루는 네 장이 따라온다. 마지막 세 장은 어떻게 인간이 그들의 칭의를 상실하며, 고해를 통하여 다시 회복하는지, 이 단계가 첫 번째 단계와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세 번째 상태’를 다룬다.

 

포고문은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대한 분석으로 문을 열면서, 필연적으로 원죄에 관한 문제들과 혼합된다. 원죄로 인해 인류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자유 의지는 타락으로 인해 파괴된 것이 아니라, 약해지고 쇠진해졌다. ‘죄 이후의 자유 의지는 오직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루터의 진술을 암묵적으로 거절했다. 그리스도는 만인을 위해 죽으셨으며, 인간이 다시 태어나고, 이로써 의롭게 되게 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공로를 통하여 은총을 허락하신다는 명료한 주장에 의해 루터의 선택 교리 안에 암시되어 있는 특정주의가 배제된다. 칭의는 변화적인 용어로 정의되며, 인간의 상태와 성품에 필요한 변화에 대한 언급이 포함된다.

 

5장과 6장은 칭의를 향한 준비의 필요성과 양식을 다룬다. 인간은 자신의 공로 없이도, 자신을 칭의로 향하게 하는 예비적 은총을 통하여 부름 받는다. 인간이 그 부름을 인정하고 협력한 결과,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어루만지신다. 

 

7장은 칭의의 원인에 대한 주의 깊은 분석을 보여준다. 칭의의 변화적 특성을 재승인하면서 칭의의 원인을 다음처럼 규정한다. 최종적인 원인 - 하나님의 영광과 영생, 효과적인 원인 - 하나님의 자비, 공로적인 원인 - 그리스도의 수난, 도구적 원인 - 세례 성사, 공식적 원인 - 하나님의 의.

 

8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 개념과 ‘값없이 의롭게 됨’ 개념을 다룬다. 두 용어 모두 가톨릭 전통에 따라 해석된다. 믿음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자 모든 칭의의 원천이며 뿌리로서, 이것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칭의에 선행하는 그 어떤 것들도(믿음과 행위를 포함하여) 칭의를 일으킬만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 선물은 값없이 주어진 것이다. 

 

9장은 믿음의 확실성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이 문제는 트렌스에서 강렬한 논쟁 주제였다. 하나님의 자비, 그리스도의 공로 그리고 성례의 효력에 관한 신자 쪽에서의 확신은 틀림없이 적절한 것이며, 부적절한 것은 개인의 칭의와 관련된 ‘이단들의 미친 확신’ 일뿐이다. 

 

10장은 인간이 의 안에서 성장하는 두 번째 칭의를 다루면서 포고문의 단원을 연다. 두 번째 칭의는 첫 번째 칭의 덕분에 인간에게 긍정적인 의무를 부과한다. 트렌트의 두 번째 칭의 개념가 개혁주의의 성화 개념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 첫 번째 칭의에서 은총이 인간에게 작용하지만, 두 번째에서 인간이 은총에 협력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 준수는 가능한 일이며 또한 필수적인 일이다. 

 

마지막 세 장은 죽을죄 때문에 칭의의 은총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관한 것이다. 은총을 상실한 사람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에 고해성사를 통하여 칭의의 은총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을죄로 인해 상실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오직 은총뿐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장은 공로 문제를 다루는데, 개신교의 비판에 과감히 직면하는 방식으로 다가간다. 트렌트는 선행은 하나님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성경적 원리를 주장하면서, 공로란 인간에 대한 신적 선물이며, 인간의 자랑을 배제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로는 인간의 자유로운 노력의 결과로 남겨진다.

 

5. 트렌트 회의 이후의 칭의 논쟁

칭의 교리와 관련하여 제기된 후기 - 트렌트의 가장 주요한 첫 논쟁은 바이우스주의(Baianism)다. 바이우스주의는 실체로서의 초자연에 대한 거부와 ‘자연’과 ‘초자연’ 사이의 의미적 구분이 특징이었다. 마이클 바이우스  신학의 주요 특징은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올곧게 창조되었으며, 이것이 인간의 자연적 상태를 정의한다는 기본적 단정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아담의 순전성은 초자연적인 선물이 아니라 그의 인간 본성의 필수적인 보완물이다. 그것을 인류 본성의 일부로 하여 인간이 살아가야만 하므로, 바이우스는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필수적으로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인 신학 전제에 의하면, 그러한 수여물 중에는 성령도 포함된다. 

 

칭의의 문제는 죄의 상태에서 자비의 상태로 변화되는 효력을 미치는 수단과 관련된다. 그러나 칭의는 순전히 자연적인 용어로 생각되어져야 함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순진함과 자연적 재능 상태로의 회복이며, 이로써 인간은 도덕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1588년 루이스 데 몰리나의 [일치]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의 일부분에 대한 주석 형식을 취했는데, 내재적 은총의 효력을 부인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은총을 화해시키고, 신적 예지에서의 은총의 효력을 인간과 은총의 선물과의 협력이라는 중간적 지식으로 대체시켰다. 칭의에 있어 은총과 인간의 자유 의지  사이의 일치에 관한 논의의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차 원인과 이차 원인 사이의 관련성 이론을 발전시킨다. 하나님은 지나가게 될 모든 것을 이차 원인을 통하여 자유롭게, 그리고 불확정적으로 미리 아신다. 

 

1640년 사후에 출판된 얀센의 [어거스틴]은 특히 ‘순수한 본성’ 개념에 대한 반대와 ‘자연’ 및 ‘초자연’에 상응하는 구분 등으로 바이우스주의와의 강한 유사성을 나타낸다. 얀센은 창조 시 아담에게 주여된 은총을 필수조건인 도움으로 규정하면서, 어떤 도움과 구별한다. 창조 시 아담에게 수여된 필수조건인 도움은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적 은총이다. 인간의 눈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조명이 필요하듯이, 인간의 자유 의지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전에 필수조건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 도움은 인간의 최초 본성의 근본적인 일부다. 

 

타락은 인간에게서 필수조건인 도움을 박탈했고, 그 결과 인간 본성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저하된 인간 본성이 타락에서 회복하려면 은총이 실제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인간의 의지를 치유할 수 있어야만 하고, 인간이 건강을 회복해서 선행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어야만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얀센은 몰리나주의자들의 충분한 은총 개념을 모순이라며 거부한다. 그러한 은총은 아담의 자연적 상태에서는 적절한 것이지만, 타락한 인간의 경우에는 어떤 도움의 형식으로 치료하는 은총이 요청된다. 얀센은 치료하는 은총은 필수적이며, 효과가 있고, 비-보편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첫째, 얀센주의와 개신교 사이의 상당한 접근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트렌트 직후 전체 가톨릭 전통은 계속적으로 칭의란 인간이 의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의의 전가보다는 활성화와 관계된 것이라고 여겼다. 둘째, 칭의라는 용어 자체는 가톨릭의 설교학적 문헌과 교리문답서에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지만, 점차 주변부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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