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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크릿(1장) - 논의의 배경(레슬리 뉴비긴) 본문

The Missional Church

오픈 시크릿(1장) - 논의의 배경(레슬리 뉴비긴)

이참리 2020. 10. 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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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크릿
국내도서
저자 :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 홍병룡역
출판 : 복있는사람 201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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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논의의 배경(The Background of the Discussion)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헌장'은 "그리스도는 열방의 빛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교회의 선교적 성격에 대한 제 확증, 아직 미완성된 과업에 대한 재인식, 교회는 땅끝까지 순례 중인 백성이라는 고백, 선교지인 이 세상에 대한 열린 자세의 필요성 등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표된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항목들이다. 오랜 전통을 가진 모든 서구 교회(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선교가 교회의 본질에 속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동안 선교사역은 교회의 외적인 활동에 속해있었다. 많은 경우에 선교 대상 교회'는 부유한 지역에 위치한 일반 '교회'와 구별하여 도시의 빈민 지역에 있는 교회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 책의 논의는 다음 두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첫째는 선교 논쟁을 폭넓은 성경적 관점으로 조망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 선교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세계적 차원의 선교뿐 아니라 현대 서구 세계의 만만찮은 새로운 이교주의를 대상으로 한 선교도 포함된다.

 

I

 

이 논의를 시작하는 관점에서 선교사역의 역사적 배경을 훑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복음은 그리스어와 시리아어를 구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있었던 최초의 선교센터 안디옥에서부터 그리스어 세계인 서쪽으로 퍼졌을 뿐 아니라, 시리아어를 매개로 지중해와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을 잇는 고대 무역로를 따라 동쪽으로도 퍼져 나갔다. 2세기 말에는 에데사(Edessa, 현재 터키 동남부 지역)가, 225년에는 현재의 이라크에, 3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아르메니아가, 5세기에 이르면 메셰드(Meshed, 이란 호라산 주의 주도), 헤라크(Herat, 아프가니스탄 서북부 최대의 도시), 메르브(Merv, 투르크메니스탄의 고대 도시) 등에 복음이 펴져 나갔다. 

 

다른 한편, 북쪽에서 내려온 이방 부족들은 북유럽과 서유럽 전역을 약탈하고 기독교 문화를 쓸어버리고 있었다. 9세기 말 유럽에 살던 사람이라면 기독교가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할 만큼 처참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서구교회는 이슬람의 우월한 문화와 군사력의 지배를 받고 그 세력에 둘러싸인 일종의 게토(ghetto)와 같이 전락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 처한 교회가 스스로를 모든 민족에게 파송되어 선교사역을 하는 공동체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암흑시대 이후 서구 기독교 세계가 부활한 것은 12세기 초에 그리스 과학 및 철학과 이슬람 신학의 종합으로 발전된 아랍 사상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이 새로운 사상이 주입된 덕분이었다.(서구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과 네스토리우스파를 비롯한 동방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빚을 진 셈이다.)

 

서구 기독교 세계가 이슬람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기나긴 투쟁은 주로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들이 이슬람 세력을 우회해 동양과 무역을 하고, 동아시아 향신료의 출처를 찾기 위한 항해 길을 개척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슬람은 종교적 신앙과 정치권력을 융합하는 신정주의 체제를 추구했는데, 따라서 이슬람에 대한 반격도 종교적 신앙과 정치권력, 군사력과 상업적 기업이 서로 뗄 수 없이 묶여 있는 체제의 모습을 가졌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을 구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시아,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가 경험한 서구의 선교는 결국 군사, 정치, 상업, 문화, 종교 등이 불가분의 관계로 섞여 있는 큰 운동의 일부였던 것이다. 두 세기가 넘도록 이 운동은 서구 교회에 그들의 세계선교사역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서구의 세력과 영향력을 배척한 세계에서 타당성이 있는 선교적 교회의 형태와 본질을 발견해야 한다. 이제는 선교사역을  팽창하는 서구 세력의 흐름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신약성경에 우리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강자가 아닌 약자의 입장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지난 20년은 '개발'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그것을 절대목표로 삼던 시기였고, 지금은 그런 시기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더 이상 '개발'을 절대 목표로 간주할 수 없다. 비서구 세계는 서구사회가 당연시하고 있는 사고방식과 그 목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 보이는 한 가지 보편적인 특징을 "점점 커지는 기대치의 혁명"이라고 불린다. 지난 시대에는 각 나라의 소규모 그룹만이 사회에 요구했던 것을 지금은 세계 모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요구하고 있다. 이 원리들을 대중적이고 폭발적인 형태로 구현한 것이 바로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The Rights of Man)다. 사람들은 "삶의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요구하고, 또 정부는 그런 것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참지 못하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신세계에 대한 기대감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사이의 내적 관계야 말로 오늘날 선교학을 논할 때 반드시 다루어야 할 이슈 가운데 하나다. 

 

기독교 세계선교가 직면한 새로운 상황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지금은 세계의 어디를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이 거의 없고, 교회는 범세계적인 모임으로서의 보편적 성격을 갈수록 의식한다는 것이다. 윌리엄 템플(Willuan Temple)이 "우리 시대의 크나큰 새로운 현실"이라 불렀던 이 현상은 과거 3세기에 걸친 선교사역의 열매다. 지금은 선교사역의 "본무"는 다름 아닌 범세계적 공동체이다. 

 

II

 

1910년에 열린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는 서구 세력이 아시아와 아프리키와 태평양 지역에 미친 악영향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1928년에 열린 예루살렘대회에서 어린 교회들을 더 많이 인정하는 분위기였고, 서구 세력의 모호한 성격과 서구 세속주의의 범세계적인 영향력에 대해 훨씬 날카롭게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10년 후 인도의 탐바람에서 개최된 대회에서는 범세계적인 교회야 말로 복음을 들고 옛 기독교 세계의 중심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교사상과 싸움을 벌이도록 부름 받았다는 새로운 각성이 일어났다. 빌링엔대회(1952년)는 선교를 범세계적 교회의 중심에 있는 본질적인 요소로 선포했으나, 교회의 울타리에 묶이지 않는 선교학의 필요성이 새롭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1960년 세계기독학생연맹(WSCF)이 '교회의 삶과 선교'라는 주제로 개최한 대회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 대한 완전히 세속적인 해석이 등장했다. 거기에 모인 학생들은 "전통적 교회구조에서 개방되고 유연하고 유동적인 집단들로 나오라", 그리고 "교회를 철저히 비신성시하라"는 도전을 받았다. 그 후 10년 동안 에큐메니컬 운동의 영향을 받은 진영들은 완전히 세속적인 비전의 영향을 받은 선교 개념을 갖게 되었다. 선교란 일차적으로 교회의 교인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정의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WCC의 '회중을 위한 선교구조' 연구 분과는 "의제를 쓰는" 주체는 교회가 아닌 세상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1968년 웁살라에서 열린 WCC 제4차 대회는 선교를 세속적인 삶에서 인간화를 도모하는 활동으로 새롭게 정의하였다. 과거에 기독교 세계 바깥에 위치한 지역을 선교지로 보던 전통적인 개념이 "선교가 필요한우선적인 상황"의 개념, 곧 교회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도모하는 행동이 필요한 상황을 우선시하는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방콕(1971년), 로잔(1974년), 나이로비(1975년) 등지에서 여러 대회가 열렸고, 복음주의 진영과 WCC 모두 상대편이 말하고 있는 바를 경청하였다. 그중에서 나이로비 보고서 - '오늘날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는 것'-는 "통전적인" 선교를 요청하면서 개인적 회심을 위한 사역과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도모하는 사역 모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귀중한 선언이었다. 

 

교회 선교의 본질에 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시급한 선교지는 다른 아닌 그들의 안방이다. 그들이 싸워야 할 가장 공격적인 이교사상은 지금 "선진국" 진영을 장악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선교를 주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행동의 견지에서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대체로, 회중의 수준을 넘어 이사회가 위원회가 수행하는 프로그램으로 구현되고 있다. 반면 선교를 주로 개인적 회심의 견지에서 보는 사람들의 관심은 대체로 회중의 수준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둘은 각각 상대방으로부터 분리됨으로 그 나름의 특성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정의와 자선을 도모하는 프로그램들은 회중의 예배와 성례에 뿌리박아야 마땅함에도, 거기에서 단절되는 바람에 그리스도의 임재와 표지라는 특성을 잃어버린 채 독선적 도덕주의에 의해 촉발된 십자군 운동처럼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예배하는 회중의 삶은 주변의 세속 공동체애 대한 자선사업으로 표출되어야 마땅함에도, 거기에서 단절되는 바람에 오로지 교인들의 필요와 욕구만 채우는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학적인 이해이고, 그 후에 구조를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 서로 다른 신념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파괴적인 방향을 ㅗ나아가지 않다록 해주는 생활방식과 언어생활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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