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리의 하루한장

오가닉 처치(1-3장) 본문

The Missional Church

오가닉 처치(1-3장)

이참리 2020. 7. 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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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르치고 세우신 교회, 오가닉 처지

 

교회의 좌석을 가득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교회가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사회와 문화가 반드시 변해야 한다. 과연 교회는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 인생들을 변화 시키고 있는가? -22p

교회의 복음 전도란 어떻게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 전부다. 일종의 잔치를 열어놓고 와서 즐기라는 식이다.... 사람들을 주일 예배 쇼로 끌어 들이기 위해 우리가 어디까지 망가져야 할까? .... 일주일 단 한 시간 동안에 들어가는 노력과 자원(시간, 돈, 인력)을 보면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교회는 주일마다 종교 쇼를 벌이는 행사장으로 변질되었다.  - 24-25p

예수님의 지상 명령은 "세상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명령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메시지를 들어라." -25p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새로운 교회가 탄생하고 자라난다. 복음을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곳, 즉 삶터와 일터에서 움직이는 교회, 삶이 펼쳐지고 사회가 형성되는 곳에 하나님 왕국의 씨앗을 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6p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이 천국에서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몸소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다. 인생이란 진흙탕에서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셨다. 이 과정을 의미하는 신학 용어가 성육신(incarmation)이다. 하나님이 '육신(carne)을 입으셨다'는 뜻이다. .... 예수님은 지금도 여전히 성육신해 계신다. 우리가 바로 그분의 발이요 손이며 눈이요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그분의 성전이며 그분의 영이 우리 육체 안에 거하신다(고전6:19).  -28p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의 말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오해하셨듯이 사람들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는 일을 계속하라는 사명을 교회에게 주셨다. 그리고 교회에게 성령의 힘을 주셔서 세상 속으로 보내셨다."(요20:19-23)
1. 나와 함께 말을 타고 나가자!

주님이 '교회'에 관해 직접 말씀하신 구절이 두 군데 있다. 첫 번째 구절은 마태복음 16장 13~20절 말씀이다. ... 예수님은 하나의 질문으로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 ...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다. 그렇지 않은 교회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결코 아니다. -38p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교회는 성장하게 되어 있다.
성장하는 교회는 반대에 부딪힌다.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 새로운 교회로 깨어나라

새로운 유형의 교회들은 여느 교회들과 매우 다르다. 옥토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더니 자연적으로 교회라는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다. 씨앗을 뿌린 곳이 그 어디든 오가닉 처치가 탄생했다. 우리의 삶이 있는 곳마다 교회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를 각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날 필요는 없다. 교회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생명체 이다. 어느 생명체든 증식은 세포 수준에서 시작되어 분열을 통해 복잡한 생명체로 변화한다. -61p
3. 좀비 신부

교회는 움직이지 않는 기관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교회는 건물을 초월한다. - 하나님이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구절이 성경에 최소한 네 군데나 있다. 열왕기상 8:27, 이사야 66:1, 스데반은 자신의 설교(행7:48)에서 이사야 66:1을 인용한다. 사도행전 17:34,25, 마가복음 13:1
초대 교회는 300년이 넘도록 교회당 한 채를 세우지 않았다. 건물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교회 건물이 생명의 근원인양 행동하는 거이 문제다. 78p

우리는 늘 엉뚱한 질문만 던진다. "어디서?" 하지만 올바른 질문은 "누가?"이다. -80p
성경에는 예배와 경배를 드리라는 명령만 있을 뿐 일주일에 딱 하루만이라는 단서는 없다. -81p

윌리엄 로(William Law) "성경 어디를 봐도 대중 예배를 명령한 구절이 없다. 대중 예배는 성경에서 강조하는 의무가 전혀 아니다. 예배 출석률은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우리의 일상 행동이 신앙이나 헌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명령은 성경의 거의 매 구절에서 발견된다.

초대교회가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는 없다. 성도들이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교회 식구들과 모였다는 구절만 있을 따름이다. -82p

하나님은 인류가 흩어져서 이 땅을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긱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옛 명령을 다시 내리셨다.(창9:1,7) 노아와 그 각족은 한 장소에 정착하려고 애썼고,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으로 반하는 건축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하나님은 언어 혼란으로 인류를 흩을 수밖에 없으셨다. 교회도 흩어져 이 땅을 가득 메우라는 명령을 받았다(마28:19-20, 행1:8). 사도들도 한 곳에 정착하여 건물을 세우려는 유혹과 싸워야 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본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마17:1-6) 베드로는 건축을 시작하려 했다. ... 사도행전 1:8에서 첫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넘어 땅 끝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채우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모두 예루살렘 안에 머물렀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기 11장에서처럼, 박해를 통해 제자들을 흩으셨다(행8:1) 성경의 아이러니 중 하나는 박해로 모두가 예루살렘 교회를 떠났지만 처음 명령을 받은 '보내심을 받은 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사도'는 말 그대로 '보내심을 받은 자'를 뜻한다. 하지만 사도들은 교회에 박해가 밀려오는 와중에도 떠나지 않은 유일한 제자들이었다. -83,84p

요16:7,8에서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예수님 이전 사람들은 어디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었을까? 답은 성전의 지성소다. 그곳은 일년에 딱 한번, 대제사장만 들어 갈 수 있다.
둘째, 예수님이 이 땅 위를 거니실 때, 사람들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났을까?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였다.
셋째,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께서 강림하셨을 때, 어디에서 하나님을 뵐수 있나? 어디를 가든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한다(마28:20).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안에 거하신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전이다(고후3:16, 6:19). 우리의 영광의 소망은 우리가 사용하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주님께 있다. 

장소와 형식에 얽매인 교회는 땅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퍼뜨릴 수 없다. 흩어져서 온 세상을 그리스도로 물들이는 제사장들의 나라, 우리는 이 아름다운 새 언약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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