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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신학 Q&A

이참리 2020. 5. 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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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언약사상 피터 A. 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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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공로의 두 단계로 정리되는 중세 유명론자들의 언약 사상을 논하고, 이 입장을 당시 신어거스틴주의자들과의 입장과 비교한 후, 그 문제점을 지적 평가하시오.

A1. 유명론
1) 최선 : 자연인의 상태에서 누구나 거룩한 삶을 살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행하며 선을 쌓으면 하나님께서 공로로 여겨주신다.
2) 하나님의 은혜 : 자연인의 최선에 대한 보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신다. 어떠한 능력을 받는 것이다.
3) 윤리 : 보상 받은 은혜(능력)를 가지고 훨씬 더 윤리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제는 여겨주시는 유사 공로가 아니라 당연한 진짜 공로이다.
4) 영생 :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영생을 주신다.
신어거스틴 주의 : 선행이 공로가 될 수 없다. 선행 대신에 믿음을 보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공로이다.
유명론의 문제점
자연인의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최선은 어디까지인가? 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최선을 공로로 여기는 자체가 모순이다.

 

Q2. 마틴 루터가 회심 전 가졌던 언약사상에 입각한 구원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이 회심을 통하여 어떻게 변화했는지 기술하시오. 이 변화와 관련하여 루터는 왜 언약의 쌍방성을 거부했는지 함께 거론하시오.

 

A2. 루터는 유명론의 교육을 받았다. 유명론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인간의 준비(최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최선이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고민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회심 이후에, 인간의 최선을 유사 공로로 여겨주신다는 생각을 버렸다. 루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자연인이 은혜를 받기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일은 없음을 깨달았다.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은혜를 받기 위한 준비는 공로 사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루터는 유명론에서 완전히 탈피한다.
루터가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의 의는 수동적인 의로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유롭다.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사람은 구약의 율법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복음에 의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루터는 믿음만 강조하면 믿음의 속성 때문에 행실이 자동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루터는 인간의 선행을 구원의 공로로 삼는 로마가톨릭에 대항해야 했기에, 의도적으로 선행을 제외한 믿음을 강조한다. 언약의 개념에서도 의도적으로 쌍방성을 제외하고 일방적 언약을 강조한다.

 

Q3. 루터는 율법과 복음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그 의미를 설명하고, 그럼에도 율법이 믿는 자들과는 어떤 관계에 있으며 가치가 있다고 루터는 말하는지 기술하시오.

 

A3. 루터는 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사람은 구약의 율법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새사람은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복음에 의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 후기에는 율법을 설명하면서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새사람(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성이 남아 있다. 그 죄성 때문에 계속해서 악을 행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율법이 필요하다. 의인에게는 필요 없으나, 죄인에게 율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율법이 죄인에게 경고를 한다.
구약 : 율법 + 은혜
신약 : 복음 + 율법

 

Q4. 루터의 “믿음만으로 의로워진다”는 개념과 스위스 개혁자들의 “사랑을 통하여 역사하는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개념의 차이를 언약의 구도로 설명하고, 창세기 15장과 17장에 대한 루터의 견해와 블링거의 견해의 차이점을 언약을 중심으로 논하시오.

 

A4. Oecolampadius는 갈라디아서 5장 6절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근거로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나타나며 사랑을 통해서 작동함을 말한다. 믿음이 율법을 성취시키며, 결국 율법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이다. 언약을 이신칭의(믿음)과 성령의 법 즉 사랑의 법(심령 속에 성령의 역사가 임함)을 통해 선행이 나온다는 것이다.
Zwingli는 『세례에 관하여』에서 세례의 근거를 아브라함의 할례에서 찾는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신약시대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메시아를 근거로, 즉 오실 메시아와 오신 메시아를 통해 동일하다는 것이다. 할례는 언약의 징표로서 인간의 반응을 말한다. 결국 언약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상호적 관계이다. 신약시대에는 세례로 한번 나타나고 계속해서 성찬을 통해 나타난다. 세례와 성찬은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징표와 서약이다. 세례는 할례, 성찬은 유월절 제사가 근거가 된다.
Bullinger는 창세기 15장을 근거로 고대 근동의 언약 체결 방식을 알았다. 언약의 확증을 위해서 피흘린 쪼갠 동물이 등장한다. 또한 창세기 17장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조건이 들어간다. 언약의 징표가 창세기 15장의 짐승(횃불, 짐승의 피)에서 17장의 할례(인간의 피)로 변화되었다. 피를 흘리면서까지 언약을 확증하시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 무너질 수 없다. 하나님이 잘못해서 언약이 깨질리는 없다.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언약이 깨진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피흘림을 통해 언약을 유지하신다. 창세기 15장은 언약의 불변성을 말씀하고 있다. 언약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쌍방성에 대한 조건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후손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지키신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야 한다. 불이행시 언약이 파기되며 언약에서 제외될 것이다.
루터의 반응 : 루터는 아브라함에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약이 있다고 보았다. 창세기 15장만 영원한 언약이며 창세기 17장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언약이며 이방인들과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 성격은 물질적이고 축복을 주는 현세적이다. 이러한 제한 때문에 할례가 중단 되었다. 율법적인 언약으로 복음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블링거의 응답 : 창세기 15장과 17장은 하나의 언약으로 연속적이다. 창세기 15장은 하나님께서 피(희생)를 통해서 언약에 들어가는 것이고, 창세기 17장은 인간의 피, 희생 예식을 통해서 언약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15장에서 시작하여 17장에서 마무리된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언약이 파기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완전은 변하지 않는 성실한 믿음과 섞이지 않는 순수한 신앙 요구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삶의 모습에서 진실함과 순결함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성부께서 요구하는 완전하라는 명령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보여주셨다. 그러기에 이것은 율법 언약이 아닌 복음 언약이다. 이것이 할례 보여주는 참된 의미이다. 할례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죽으심(피)을 보여주는 언약의 징표이다. 예수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시다. 하나님 편에서의 피 흘림과 동시에 인간 편에서의 피 흘림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언약적 책임을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때문에 언약은 갱신되고 유지된다.
블링거는 이신칭의 만을 강조하는 루터를 비판한다.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살의 모습의 당위성을 결여시키는 것이다. 칭의를 얘기하며 조건으로 성령 사역을 함께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삶의 실제적 변화(경건의 모습)이 나타난다. 삶의 모습이 없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율법이 칭의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Q5. 언약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 쌍방이 상호적으로 묶여 있다는 칼빈의 언약의 상호성 개념의 내용을 설명하고, 이것은 칼빈의 예정론과 비교하여 볼 때에 무엇을 시사하는지 기술하시오. 그리고 칼빈이 말하는 언약의 조건성이란 무슨 말인지 설명하고, 언약이 가지고 있는 무조건적 성격과 조건적 성격을 칼빈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기술하시오.

 

A5. 칼빈의 언약 개념은 binding(묶는다, 결속, 구속)의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인간에게 결속하셨다.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인간과 연합을 이루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과 상호 관계를 위해서 낮추셨다. 결국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 졌다. 그래서 칼빈은 모든 언약의 용어를 “은혜 언약”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자비이다. 인간도 언약으로 하나님께 묶였다. 묶여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온갖 좋은 것들이 언약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졌다. 인간이 하나님께 메여있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묶여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는 거룩함(의로움)의 요구이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하였고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며 인간이 의로워 지도록 역사하신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묶임)이다.
예정과 언약과의 관계는 기독교 강요 초판(1536)에는 예정이 섭리부분에 속해 있었으나 최종판(1559)에는 섭리에서 분리되어 구원론(성령론) 부분에 속하였다. 예정론을 구원의 구도로 이해하였다. 예정은 구원론에서 역망적으로 조명해야 한다. 영생을 얻은 자는 칭의와 회개가 이루어 진 것인데, 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것이(칭의와 회개, 성화) 우리에게 온다.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가? 내적, 외적 소명을 통해 믿음을 갖게 되었다. 누각 부르셨나? 삼위 하나님의 예정(선택과 유기)이 있었다. 즉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정을 이루어 나가시는 방법이며, 예정은 언약이 왜 이렇게 되는지 설명해 주는 근거가 된다.
하나님의 언약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언약의 무조건적인 측면과 조건적인 측면이다. 언약의 무조건성은 인간의 반응과 무관하며, 인간이 언약을 어길 지라도 메시아를 통해 언약을 갱신 회복시키시고 영원한 연약을 맺으신다. 즉 하나님의 관점이다.
언약의 조건성이란 쌍방의 책임과 의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이런 조건하에 넣으셨다. 이 조건성은 인간의 반응과 상관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것처럼, 집단적 의미에서 언약이 파기될 수 있다.

 

Q6. 언약의 두 가지 유익이라고 일컫는 언약의 핵심 내용인 칭의와 성화가 칼빈의 언약 구도에서 어떤 관계에 있는지 기술하고, 칼빈에 의하면 불완전한 성화가 어떻게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는 언약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인지 설명하시오. 그리고 이것이 성도들의 삶과 교회에 미칠 수 있는 영적 유익이 무엇인지 말하시오.

 

A6. 구원(칭의와 성화)은 이중 은혜로 언약적 유익이다. 언약의 조건은 거룩함인데 칭의를 전제로한 성화이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의로워져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복음)이다. 만일 성화가 칭의로부터 분리된다면, 죄와 부패로 가득한 성화, 용서 받지 못한 성화각 될 것이다. 만일 칭의각 성화로부터 분리 된다면, 진실성이 없는 칭의, 거짓된 칭의가 될 것이다. 로마가톨릭에서 선행을 공로로 여기는 것은 칭의와 분리된 선행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화에는 관심이 없는 거짓된 칭의이다.
성화의 불완전성 – 우리는 언약의 징표로 할례를 받는다. 신약에서는 마음의 할례로 표현하며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칼빈은 율법이 문자가 아니라 영이라 말한다. 은혜언약을 단순한 율법 준수가 아닌 복음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선행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부족하다. 이것은 칭의를 전제로한 불완이다. 전가개념이 칭의에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성화에도 연결된다. 즉, 하나님께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신다. 완전한 것으로 여겨주시는 것이다. 은혜언약 안에서 선행은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것으로 여겨주신다. 선행의 의로움은 이신칭의와 상반되지 않는다. 선행의 의로움은 부수적이며 이차적이고 종속적이다.
이로써 얻을 수 있는 성도의 유익은 그리스도를 믿고 의로워짐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과 거룩한 삶에 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전적인 신뢰를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선행을 공로로 여기지 않음을 통해서 자신의 행실을 자랑하지 못하며, 구원(칭의와 성화)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 있다.

 

Q7. 예정론으로 말미암아 칼빈은 쌍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언약개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일반적인 추측과는 달리, 칼빈은 예정개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언약 개념을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칼빈은, 신약 시대에 어떻게 언약관계에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언약이 어떻게 파기될 수 있는지 논하고, 신약시대에도 어떻게 언약에 입각한 경고가 가능한지 설명하시오. 우리는 이것을 강단(설교)에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말해보시오.

 

A7. 신약의 백성들은 세례(유아세례 포함)를 통하여 언약에 들어간다.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를 받고 언약에 속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진정성 있는 공정인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만일 신앙곡백이 없고 삶에서 진정성이 없으며 순종과 감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언약 파기의 가능성이 있다. 성인 세례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삶 속에서 진정성이 드러나지 않고,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며 분노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면, 언약 파기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언약 파기자들은 언약의 일방성만 주장하며, 언약의 쌍방성, 상호성을 알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만 묶여 있다고 생각한다. 즉 회자는 교회 공동체에게 주기적으로 죄에 대한 선포와 함께 언약 파기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 주어진 것처럼, 오늘날의 강단에서 언약적인 복과 저주가 함께 선포되어야 한다.

 

Q8. 칼빈은 성례에 관련하여 언약 개념을 상당한 분량으로 사용했다. 칼빈에 의하면, 언약관점에서 보았을 때 성례가 무엇이며, 성례가 언약 백성에게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칼빈이 언약의 관점에서 언약의 세례와 성찬이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과 어떻게 그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지 유아세례에 대한 그의 입장과 아울러 설명하시오.

 

A8. 칼빈은 언약의 징표로서 성례를 말한다. 성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생명을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믿음을 강화 시킨다. 세례를 통해 언약을 체결하고 성찬을 통해 그 언약 관계를 계속해서 갱신하는 것이다.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눈에 보이는 말씀으로 성례가 필요하다. 인간은 육신에 속하였기에 육신의 가시적 방법이 필요하다. 성례는 성령의 역사로 말씀(약속, 복음)에 대한 확실성, 진실성을 우리 심령에 각인(확신, 인침seal)시키는 것이다. 또한 공개적으로 만인 앞에 우리의 신앙을 입증한다. 하나님 앞에서, 천사들 앞에서, 그리고 온 우주와 사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공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성례는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의 방법이다. 로마서 6장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로 세례 받는 것(그리스도로 인하여 세례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표시이며, 그 연합됨을 재확인하는 것이 성찬이다.
신구약의 연속성.
신약과 구약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언약의 중재자인 예수그리스도, 메시아 때문에 영원하며 하나이다. 언약의 본질과 실체는 동일하다. 다만 시대마다 집행 방식이 다를 뿐이다. 태초부터 동일한 율법과 교리가 있었고,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중재자가 되시며, 신구약 모두 칭의,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워진다. 그리고 신구약 모두 성례에 대한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하며 신구약 모두 영생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칭의(의로움)과 성화(거룩함)이다. 세례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영생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순종 서약이다. 세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언약에 들어갔음을 재확인하는 것이 상찬이다.
세례의 근거를 구약 아브라함의 할례에서 찾았다. 유아세례는 유아할례로부터 근거로 삼는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신약시대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메시아를 근거로 동일하다.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통한 언약이며, 신약은 오신 메시아를 통한 언약이다. 동일한 중보자로 언약 또한 동일하다. 언약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상호적 관계인데,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징표로서 구약은 할례를 받았고 신약은 세례를 받는 것이다. 신약과 구약의 언약에는 연속성이 있다. 상호 관계를 나타내는 징표와 서약으로 신약은 세례와 성찬이 구약은 할례와 유월절 제사가 그 근거가 된다. 세례는 할례에서, 성찬은 유월절 제사가 근거가 된다.
할례와 세례와의 관계
동질성 – 아브라함의 언약에 근거하고 있으며 약속이 동일하다(약속의 땅 – 천국, 약속의 자녀들 – 천국 백성들). 이것은 언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차이성과 외형적 방법 – 신약의 세례가 더 분명하고 뚜렷하다. 더 풍부하고 완전한 의미를 드러낸다.
유아세례 – 언약의 연속성으로 유아세례를 줄 수밖에 없다. 신약과 구약을 분리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은혜 언약으로 동일하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할례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유아할례). 유아세례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아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자녀를 통해 입증되는 것이다. 유아세례를 통해 유익과 권한을 유아에게 주셨다. 부모만이 아니라 회중이 함께 그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다.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과의 관계, 신약의 세례와 성찬과의 관계는 동일하다.

 

Q9. 언약을 지키려는 성도들의 노력과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기도와 회개를 통하여 어떻게 나타나는지 논하시오. “언약적 기도”와 “언약적 회개”의 개념을 생각하시오. 그리고 목회자로서 이것을 통하여 어떻게 성도들에게 영적 유익을 줄 수 있겠는지 말해보시오.

 

A9. 언약적인 삶은 참된 경건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언약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 육신의 정욕을 물리치는 삶(탐심 곧 우상숭배를 물리치는 삶)으로 나타난다. 언약 백성에게는 영생을 보상으로 주시며 이 세상에서의 복도 약속해 주셨다.
언약이 지켜지는 중요한 방법으로 언약적 기도가 있다. 언약에 근거인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의무를 근거로 기도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의 유익을 근거로 선조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는 죄사함과 거룩한 삶을 위한 언약적인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 힘을 얻고 언약의 백성으로 두려움 없이 울부짖으며 기도할 수 있다.
언약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구원, 천국, 영생, 복에 대한 약속들이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며 확인된다. 그리스도께서 중재자가 되어 그 언약을 보증하신다. 언약 백성들이 죄를 짓거나 유혹에 빠질 때에도 언약에 근거하여 담대히 회개할 수 있다.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언약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를 통해 다시 언약을 붙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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