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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지를 가다

마틴 부처의 스트라스부르크

이참리 2020. 7. 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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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부처는 스트라스부르트의 대표적인 개혁가로 화해의 사람이었다. 프로테스탄트들과 로마가톨릭의 화목을 도모하였고, 루터 진영과 쯔빙글리 진영간에 신학적 차이에도 화합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영국국교회가 대륙의 칼빈주의적 방향으로 나가도록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16세기의 에큐메니스트(Ecumenist)라 할 수 있겠다.

마틴 부처

마틴 부처(Martin Butzer, 1491-1551)는 16세가 되던 1507년 도미니칸 수도원에 들어갔고, 1510년에는 도미니칸 수도사로 헌신하였다. 1515년까지 그는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에서 신학공부를 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에라스무스의를 통해 신학과 인문학을 접하기도 하였다. 1518년 4월에 신학논쟁에 참석하기 위해 하이델베르크에 왔던 루터를 만나기도 하였다. 부처는 처음에 루터를 만나 그의 개혁사상에 공감을 하였지만, 차츰 쯔빙글리에게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나중에는 칼빈과 가까이 지내며 개혁교회 종교개혁가로 자리매김하였다. 1524년에는 [독일 미사의 순서와 내용](Order and Contents of the German Mass)을 출판하여 예배의 모본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1529년 2월 20일에는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로마가톨릭 미사를 폐지하기도 하였다. 부처는 1524-1531년에는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생 아우렐리아(St. Aurelia) 교회에서, 그리고 1531-1540년에는 같은 지역의 생 토마스(St. Thomas)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칼빈이 제네바 시로부터 쫓겨나 스트라스부르크에 왔을 때, 부처가 그 목회의 길을 열어주어 스트라스부르크에 피신해온 프랑스 난민들을 섬기도록 하였다. 

 

생 토마스 교회

생 토마스 교회는 마틴 부처가 1531-1540년에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목회했던 교회이다.

 

요한네스 구텐데르크 동상

 

 

마인쯔가 고향인 요한네스 구텐베르크(1395-1468)는 스트라스부르크에서 1434-1444년경에 금속활자 인쇄기를 발명하였다. 스트라스부르크의 구텐베르크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는 자신이 발명한 인쇄기로 인쇄한 성경의 한 페이지를 들고 있다. 그 내용은 "빛이 있으라"라는 성경귀절이다. 인쇄기의 발명은 정보의 대량생산과 신속한 확산을 가져왔고,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이 짧은 기간 안에 유럽 전역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 되는 동력이 되었다. 

 

노틀담 대성당, 스트라스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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