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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폴 히버트) - 7장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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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폴 히버트) - 7장

이참리 2020. 10. 15.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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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선교와 세계관의 변화
국내도서
저자 : 폴 히버트(Paul Gordon Hiebert) / 홍병룡역
출판 : 복있는사람 20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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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근대적 세계관

 

역사상 가장 큰 세계관의 변화 중 하나는 17세기 근대 과학과 근대성의 출현으로 일어났다. 4세기 서양의 정신은 유신론적 사상으로, 모든 생명과 자연은 인격적인 하나님, 곧 인간을 향해 완전한 목적을 갖고 계신 분이요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세계에서 사람들은 역사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13세기가 지나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의 사상이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순례자들과 스페인의 이슬람교 대학들에서 공부한 학자들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다(Crosby 1997, 56). 13세기에 이르러 성당 부속학교들이 대학들로 대치되기 시작했고, 대학은 근대성의 기초가 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르쳤다. 프랑스 혁명(1789-1799)이후 합리주의와 시민의 뜻에 기초한 세속국가가 등장했다. 공적인 삶은 이제 이성이 독점하는 영역이 되었으며, 불가지적인 하나님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종교는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나고 하나님도 공적인 삶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었다. 철저하게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역사철학이 출현해서 정신을 물질로 환원하고, 도덕도 물질적 진보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구성물로 환원시켰다.

 

이성과 자유를 이상으로 삼았던 18세기의 계몽주의는 근대성으로 발전하였다. 르네 데카르트는 문화적 편견에 물들지 않은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데 앞장섰다. 추상적이고 연산적이며 디지털 적인 그리스적 이성을 경험에다 적용하여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고, 심지어 자기 존재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성이 옳고 참되며 선한 것을 가늠하는 궁극적 심판관이 된 셈이다. 

 

18세기 이후에,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분석에 대한 강조는 전통적인 중세 세계관을 변화시켰다. 세계가 영적인 실체가 아니라 물질적인 실체로, 목적론적 존재가 아니라 기계적 존재로 이해되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근대성은 세계 도처에 퍼졌다. 근대성은 세계에 대한 획일적인 관점을 제공하며, 과학의 자연 지배를 통해 결핍, 부족, 재해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한다. 

 

근대성의 인지적 주제들

 

근대성은 복잡하고 문화에 따라 무척 다양하지만, 모든 양상을 가로지르는 중심 주제들을 끌어낼 수 있다.  

 

자연주의/초자연주의

 

근대성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원론이 서양 사상에 다시 도입된 현상이 있다. 

중세 유럽은 창조주와 창조세계의 의존적 이원론이 지배했다. 전자가 궁극적 실재로서 만물을 지배하는 영원한 존재였고, 후자는 의존적이고 종속적이며 시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은 높이 받드는 반면, 돈을 벌고 지상의 안락을 구하는 일은 멸시하는 풍조였다. 예술은 주로 종교적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었고, 영적인 실재들을 후광과 같은 가시적 표시들로 표현했으며, 천사와 귀신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그렸다. 

 

그리스 이원론의 도입은 이런 실재의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실재를 연관성이 없는 두 영역, 초자연적 영역과 자연적 영역으로 나누었다. 과학계는 갈수록 세속화되었다. 15세기의 지구에는 예루살렘이라는 거룩한 도시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대륙들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의 섬(Orbis Terranrim)이었다. 이 거룩한 공간은 어둡고 비인간적인 악한 허공에 둘러싸여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고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모험이 유럽인들의 지구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7세기 말에 이르러, 유럽 지식인의 심상에서 하늘의 영역과 땅의 영역이 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갈수록 비실재적 존재로 변했고, 물질적인 우주가 궁극적 실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자연에 개입한다는 사상은 다수가 포기했고, 일반 섭리만 견지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천사와 귀신은 모두 다른 세계로 추방되고, 종교는 하늘의 문제로 국한되고 말았다. 자연은 이제 영적인 거주자가 자리를 비운 이 세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실재를 오로지 에너지와 물질의 견지에서 보게 되었고, 자연 역시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충족적이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로 간주했다. 이 두 영역은 각각 자율적이고 서로 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이원론이 근대인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관념은 종교를 개인적인 믿음의 문제로 치부하고 일상생활의 세속화를 초래한다. 과학주의는 이른바 자연이 실재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창조주/창조세계의 구분으로부터 초자연/자연의 이분법으로의 전환은 심각한 철학적 물음을 제기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면, 누가 땅을 주관하는가? 존 로크는 인간이 세계의 신들이고 그들이 이성, 과학, 정부를 통해 세계를 설계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는 근대 생활의 모든 분야의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의 폭발이었다.

 

자연주의적 형태를 띤 근대성은 마침내 종교적 초월성과 계시를 부정하고, 모든 것이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정연한 자연 시스템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다. 종교는 맹목적인 믿음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비합리적이다. ‘초월’에 호소하는 것은 미신으로, 또는 학문적 토론의 ‘범주 바깥’에 있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 세계/ 다른 세계들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를 생명이 충만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근대성은 이 세계를 생명이 없는 입자들–원자, 퀴크, 지금은 끈이나 고리–로 구성된 우주로 보고, 세계의 움직임을 하나님과 무관한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법칙을 이해하면 인간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신비와 초월이 들어설 자리가 거의 없다. 근대성의 타당성 구조로 군림하게 된 과학은 주로 합리적 방법을 사용하여 물질세계를 연구한다. 유물론은 과학자들이 몸담고 헤엄치는 물과 같고, 유물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리학은 경험적 자료를 검토한 뒤에 유물론적 틀 안에서 검증이 가능한, 현상에 대한 설명을 내놓았다. 인문과학도 이와 똑같은 길을 따른다. 과학은 그 정의상 분석 범위를 이 세계로 제한하기 마련이다. 과학은 하나님과 인간의 목적 같은 초자연적이고 목적론적인 설명을 배제시킨다. 이로 인해 많은 근대주의자는 이 세계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영적인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이상학적 가정을 하게 되었다. 영원보다 이생에 관심을 기울이면 신체적 안락과 물질적 풍요를 강조하게 된다. 초점이 다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맞추어지면서, 관심사도 영원에서 현재로 바뀌었다. 중세는 우주 역사에 뿌리박고 있던 시기였다.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과 창조로 시작해서 영원한 세계로 끝나는, 신적인 역사의 일부였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근대성은 과거 세대의 이야기나 장래 세대의 안녕보다도 오늘의 행복을 더 중요시 한다. 

 

인간중심 / 하나님 중심

 

초자연/자연의 이원론과 함께 신 중심적 세계가 인간 중심적 세계로 바뀌었다. 중세의 서양문화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그분의 다스림 아래에 인간 공동체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교회가 있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고귀한 가치가 있었으며, 성당은 도시생활의 심장이었다. 근대성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삶을 거꾸로 뒤집어서, 인간을 우주의 중심과 만물의 척도로 삼는 세계로 대치했다. 인간들이 진리의 중재인이었다. 그들은 사회와 문화를 만들었고 역사에 대해 책임을 졌다. 그 결과 하나님이 운영하던 세계가 인간들이 조작하는 세계로 바뀐 것이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의 전환은, 근대인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 인간은 이제 우주의 중심이므로 인간의 본성 자체가 변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세계를 연구하는 자율적 주체들이다. 그들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용하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정하는 자는 바로 인간이다. 대다수 근대인들이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저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분을 “초월”의 영역으로 밀어냈다. 즉 하나님을 교회, 성스러운 의식, 기적 등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곳으로 내보냈다. 근대가 보인 첫 반응은 무신론이 아니라 이신론(deism)이었다. 

 

근대 철학에서는 우주에서 하나님의 자리가 문젯거리가 되었다. 맨 처음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되 그것을 수학적 정확성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든 위대한 창조주였다. 그분은 이 질서의 유지자이기도 했다. 그분의 섭리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수학적 규칙성을 간섭하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능력으로 드러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스스로 끝없이 돌아가는 기계가 과연 “초월적” 시발점을 필요로 할까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에게 남은 유일한 장소는 환원 불가능한 사실밖에 없었다. 즉 사물 안에 이해 가능한 질서가 존재하고 도덕적 질서가 필요하다는 사실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계몽주의는 하나님을 죽였다. 마르크스와 같은 다수의 사람에게 이것은 종교의 도덕적, 사회적 횡포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했다. 근대인은 인간의 노력에 의미와 안전을 제공했던 성스러운 덮개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세상에 살면서도 자기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사회에 의미와 도덕을 제공하는 종교의 필요성을 보았고, 지배자들이 몸담을 종교적 색채를 띤 시민종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와 함께 자유와 평등의 교리, 자유와 인권에 대한 강조, 사유재산권과 자본주읠를 중시하는 사상도 도래했다.

 

과학 / 종교

 

초자연/자연의 이원론과 함께 과학과 종교의 분리현상이 일어났고, 과학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설명 체계로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계몽주의 이후, 과학은 종교를 자신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규정지었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경험적이며 만인에게 진리인 데 비해, 종교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개인적 신앙의 문제라고 했다. 과학은 종교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서, 그것을 여러 종으로 나누고 논리성에 따라 서로 비교하고 나름대로 등급을 매겼다. 이런 식으로 과학은 종교를 사적인 신념과 미신의 세계로 밀어냈고, 오로지 자기만이 공적 광장에서 진리를 규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학 숭배 현상이 낳은 한 가지 결과는, 과학 자료들뿐 아니라 과학 이론들도 정신적 구성물이 아닌 “사실”로 주장된다는 점이다. 이런 성향은 과학 지식이 고도로 전문화되면서 더욱 강화되어서, 외부인은 사실과 정신적 구성물을 서로 구별하기가 무척 어렵다. 

 

과학은 경험과 이성의 탄탄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 근대성의 주장이다. 이에 비해 종교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과학은 물질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칙들, 곧 신과 무관한 법칙들을 찾는다. 땅 위의 사건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하나님, 천사, 마귀와 같은 초월적인 영적 존재들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 주변의 세계를 탈신비화하고 탈신성화하려는 세속주의를 더욱 부추겼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으로부터 실재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을 듣는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새로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세속주의 / 천상의 심령주의

 

과학의 승리는 모든 영역에 걸친 사상의 세속화를 동시에 몰고 왔다. 한때 삶의 중심이었던 종교적 믿음, 관습, 기관은 이제 변두리로 밀려났다. 중세 유럽은 역사를 목적과 의미를 지닌 거대한 드라마로 보았다. 그러나 근대인은 시간을 우주적 드라마의 한 차원으로 보는 관점을 잃어버렸다. 

 

공적 영역 / 사적 영역

 

근대 세계에서 “세속적” 부분과 “종교적”부분의 분리는 삶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그리고 공적 지식과 사적 지식으로 나누게 했다. 이 공적인 기관들은 대기업, 노동조합, 관료제도, 정당, 학계 등 공적인 삶을 지배하는 모든 것이다. 사적인 영역은 가정, 자발적 협회, 동네와 같이 개인들이 주관하고 있는 삶의 부분이다. 

 

공적인 진리는 세속성, 인본주의, 유물론, 합리성을 특징으로 삼는 만큼 도덕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우리 문화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과학과 가치중립적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적인 진리는 개인적 믿음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에,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진리를 달리 인식하는 문제라고 본다. 종교적 진리, 정서, 도덕, 전통 등은 사적인 영역으로 분류되는데, 그곳은 다원주의를 작동원리로 삼고 있어서 각각 나름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존중된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사항은 자신의 종교적 진리나 도덕적 진리를 남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 미친 영향

 

근대의 신플라톤주의적 이원론은 수많은 서양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분열증을 안겨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창조, 타락, 구속, 최후의 심판, 새 창조로 이어지는 우주의 역사를 믿는다. 이것이 그들에게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몸담은 일상 세계에 대해서는 자연주의적 견지에서 설명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있을 자리가 거의 없다. 

 

이 같은 근대적 이원론으로 교회는 큰 타격을 입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는 이 긴장을 줄여 보려고 성경의 기적들을 자연주의적 견지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보수주의 신학자는 기적의 실재는 긍정했지만 그것이 이 세계를 다스리는 법칙을 깨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가 속한 물질세계가 비인격적 법칙들에 따라 움직인다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이 두가지 견해 모두 하나님을 일상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선교의 영역에서 그 이원론은 “복음전도”와 “사회복음”의 구분을 가져왔고, 이는 근대 사회의 세속화를 낳는 그 이원론을 더욱 강화시켰다. 복음전도를 초자연적인 영혼구원과 관련시키고, 사회복음을 식량, 의료, 교육과 같은 인간의 신체적 필요를 채우는 일과 연관시킨다. 선교사들은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그들은 자신의 과제를 선교지 주민을 기독교화하고 문명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두 사역을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의 많은 지역은 선교사가 가져온 학교와 병원처럼 과학에 바탕을 둔 기관은 환영했으나, 복음과 교회는 배척했다. 결과적으로, 근대의 선교는 종종 다른 지역을 세속화하는 면에서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공/사의 분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선교의 개념 전체에 대해 우려를 품게 만들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우리의 진리가 다른 이들의 진리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복음은, 한마디로, 그것이 만인을 위한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기계론적 뿌리 은유 / 유기적 뿌리 은유

 

그리스 이원론의 재도입으로 유기적 세계관이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바뀌었다. 르네상스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도입했다. 갈릴레오, 데카르트, 라플라스 같은 과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면서, 진짜 세계는 정확한 수학 공식에 따라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천체들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유기적 뿌리 은유에서 기계론적 뿌리 은유로의 전환은 주변 세계를 보는 방식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곳도 아니고, 인격적인 관계들로 가득 찬 곳도 아니었다. 갈수록 이 우주는 생명이 없는 은하계들과 별들로 가득 찬 비인격적인 공백상태로 변모했다. 

 

기계론적 세계관과 함께 구조의 개념도 등장했다. 구조란 비인격적 규약들 또는 작동의 규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 시스템에 속한 비인격적인 부분들의 상호관계를 뜻한다. 이 원리는 자연과학 뿐 아니라 인문과학에도 적용되었다. 갈수록 자연과학을 모델로 삼아 객관성을 지니려고 애쓰는 중이다. 사람들은 이제 사회적, 언어적, 문화적 구성의 부산물로 변모했다. 중세시대에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인문학과 예술은 학계에서 낮은 자리로 밀려났다. 

 

토대주의(foundationalism) 전일론(holism)

 

토대주의는 12세기에 아랍 대학교와 스페인 대학교들이 그리스 사상을 다시 소개하면서 등장했다. 이 사조가 제기한 중심 물음은 “실재에서 변하지 않는 보편자들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실재에서 불변하는 기본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알고 다함께 묶어 놓기만 하면 실재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대주의는 환원주의적 인간관을 낳았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지만, 그들의 영성은 그들의 문화적 신념에 의거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들의 문화적 신념은 그들이 속한 사회적 공동체에 의해 형성된다. 

 

토대주의는 결정론(determinism)과 기술적 해결책에 기초한, 실재에 대한 공학적 접근으로 이어진다. 또 과학을 서로 단절된 여러 분과로 나눔으로써 노동의 분업을 창출하고, 전문가와 문외한의 간격을 절대화한다. 

 

토대주의는 또한 궁극적 진리는 무역사적이고, 무문화적이며, 인식 가능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것은 명제적 본성을 지닌 그리스 철학의 방법론, 즉 디지털적 범주들과 추상적이고 연산적인 논리를 사용한다. 이것은 범주들 안에 담긴 내부적 모순과 희미함을 모두 배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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