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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03 [목회 신학] - 제 6장 교회와 말씀 목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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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03 [목회 신학] - 제 6장 교회와 말씀 목회

이참리 2020. 7. 16.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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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3: 목회신학
국내도서
저자 : 토머스 C. 오든
출판 : 웨슬리 르네상스 2020.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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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03 목회와 신학 - 토마스 C. 오든

 

6장 교회와 말씀 목회

A. 교회

1. 교회에 대하여

교회란 무엇인가? 웨슬리는 설교 74번 교회에 대하여(Of the Church)(엡4:1-6)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이 설교는 웨슬리 교회론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는데, 웨슬리는 자신의 교회론이 영국 국교회 신조의 제 19조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론의 성경적 전제는 교회가 한 성령 안에서 한 소망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의 몸이라는 것이다. 

 

2. 교회는 건물이 아님

웨슬리는 “두 세 신자가 함께 모인 곳에 교회가 있다”(마18:20)는 말로 교회 설명하기를 선호했다. 웨슬리는 바울의 “네 집에 있는 교회”(몬1:2)라는 말을 통해 “기독교 가정도 교회로 부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3.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교회 건물을 공적으로 소유하거나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바울의 편지에서, “로마에서 …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롬1:7)라고 쓴 것은, 로마에 있는 모든 신자에게 쓴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건물로 축소해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도록 함께 부르심을 받았고, 그 모임에서 모든 시대와 전 세계의 신자와 연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한다.

 

a. ‘고린도에 있는’ 지역 교회와 ‘전 세계’의 보편교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교회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각 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말하였다. 즉 교회는 한 집이나 가정에도 있을 수 있고, “한 도시나 지역, 국가”로서의 무리 안에도 있을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에클레시아’의 용례를 다양하게 설명한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는 표현을 통해 그 지역 전체의 모든 교회 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분명히 포함시킨다.”(고후1:1) “나라 전체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의 수는 많으나, 그 모든 모임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이다. 에클레시아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 즉 함께 모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들을 말한다.

 

b. 교회의 정의

한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셨고, 이 소망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다스리신다. 주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은 그들의 영광이자 기쁨이다.”

 

c. 한 성령, 한 소망, 한 믿음, 하나의 교회, 하나의 세례

교회가 공동으로 가지는 하나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로, 그들의 소망의 기초다.” 교회에는 “하나의 세례가 있는데,” 이는 한 분 주님께서 교회에 지속적으로 주시는 내적이고 영적인 은혜의 외적 표징으로 주신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영과 더불어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신다(롬8:16). 이 내적 증거는 한 몸에 속한 각 사람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주어진다. 

 

 

d. 특정 지역 모임에의 참여

“영국 국교회란 공교회의 일부이자 회원으로서 영국에 사는 사람들”로서 그 속에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님, 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다. “공교회라는 큰 몸의 일부로서 특정한 지역이나 나라에 사는 사람을 우리는 적절한 용어로 국가 교회” 또는 도시 교회, 지역 교회라고 부른다. 두세 사람의 그리스도인의 모인 모임은 가장 좁은 의미의 교회이다.

교회는 “신자의 모임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부여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 신자의 모임은 “전체 교회와 그것을 이루는 여러 특정한 교회 모두”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4. 부르신 소명에 합당한 삶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임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 이 용어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뿐 아니라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부르신 소명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먼저 “‘모든 겸손으로’ 행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가지며, 우리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가 얼마나 쉬운 지와, 비록 과거의 죄를 용서받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죄로 향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부르신 소명에 “합당하게 행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하며 그에게서 겸손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겸손과 온유를 통해 ‘인내’를 배운다. 이 인내를 통해 우리는 “오래 참음으로 행할 수 있도록” 준비된다. 부르신 소명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의 짐을 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의 짐을 덜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 교회이다.

 

5.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사람은 모든 근면함으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 애쓴다.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고 결합시키는 것은 마음에 가득한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거룩한 끈이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살아있는 일원이 되고, 또 그 안에 계속 머물 수 있다. 이것이 초기 교회의 신경에서 우리가 “거룩한 공(catholic)교회”를 고백하는 이유다. 때문에 교회에 속한 사람은 비록 정도는 다르더라도 모두가 거룩해야 한다. 

 

B. 메소디스트 신앙고백서 제3조, 교회에 대하여

웨슬리는 1784년 미국 메소디스트들을 위해 영국 국교회 39개 신조를 개정했다. 국교회 39개조 중 교회에 관한 19조는 실질적 수정 없이 메소디스트 24개 신조 중 제 13조가 되었다. 

 

1.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및 영국 국교회 39개 신조와의 연관성 : 루터교. 영국 국교회. 메소디스트 교회론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서 세 전통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 연관성은 초기 기독교에서 일치를 이루었던 사도적 전승에 기초해 있다. 

 

미국 메소디스트 25개 신조(1784년) - 제 13조 교회에 대하여 

  •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신자의 모임으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고, 그리스도께서 필요에 의해 제정하신 성례가 바르게 행해진다.

 

2. 웨슬리는 왜 초기 기독교 일부 요소를 비판한 영국 국교회 신조의 문구를 삭제했나?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신조 제 19조의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교회가 오류를 범했듯, 로마 교회도 행위와 예배 의식의 방법뿐 아니라 신앙의 내용에서도 오류를 범했다”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두 개의 가설이 있다. 첫째, 편집의 목적이 종교개혁 신앙고백의 요점을 간추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둘째, 웨슬리가 자신의 멘토로 삼은 초대 교부들이 활동했던 안디옥의 초대 교회와 로마교회의 신앙고백을 비난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교회의 의미를 참으로 믿는 비국교도와 로마 가톨릭 교회 회원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의 일원이라는 전제와 일치하도록 해석하였다.

 

C. 복음적인 목사

1. 예언자와 제사장

a. 목회에 통합된 두 직분에 관한 성경적 지침

복음전도자로서 목사에 관한 웨슬리의 가르침은 젝슨판 웨슬리 전집에 수록된 그의 설교 “목회적 직분”에 잘 나타난다. 웨슬리는 목회 사역 중 예언자 직분과 제사장 직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b.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신도회가 영국 국교회를 떠나지 않고 거기 남아 내부에서 교회를 갱신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평신도 설교자들에게 “여러분의 영역 안에서 스스로 절제하십시오”라는 말로 그들의 목회적 사역을 남용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웨슬리는 그들이 단순하고 용감하게 복음을 설교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권했다. 즉, 자신을 영국 국교회에 속해 있는 ‘특별한’ 복음 전도자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c. 서로 다른 영국과 미국 교회의 상황

메소디스트 순회 설교자들은 교구 사제가 아닌 순회 설교자로 임명받았는데 미국 독립전쟁 이후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영국 국교회 사제들이 미국 독립전쟁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기 위하여 미국 동부 해안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자 성례를 집행할 수 있는 안수받은 사제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메소디스트 설교자들은 영국 국교회 사제의 도움 없이 외딴 지역의 마을들에서 성례를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영국에서도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신도회가 예배당을 소유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그러면서도 영국 국교회로부터 완전히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리처드 와코트와 토머스 베이시는 첫 장로로, 토머스 코크와 프란시스 애즈베리는 첫 감독으로 구별되었다. 그들은 말씀 선포와 성례의 집행이, 목회 직제(설교자와 사제)로 통합되기를 바랐다.

 

d. 사역의 다양한 형태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에 머물러 있기를 열망했으나, 영국과 미국의 많은 메소디스트들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영국 국교회와의 분리 문제는 1756년부터 논의가 이루어졌고, 1784년에는 가시적 분리를 원하는 메소디스트의 교단 설립이 논의의 쟁점이 되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마지막까지 분리된 단체를 원하지 않았고, 영국 국교회 안에서 각성시키는 것임을 주장했다. 이것은 예언자와 제사장을 구분하는 성경적 증거를 기초로 한 주장이다.

 

2. 성경에서의 예언자와 제사장 구분

a. 신약은 어떻게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가?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리처드 후커의 가르침을 받아, 예언자는 설교자와 가르침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제사장은 성례를 집례 할 책무를 지닌다고 구분하였다. 예를 들어 아론은 설교하지 않았다. 그의 직분은 기도하고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예언자(나단,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등 성령께서 임하셔서 특별한 능력을 부어주신) 예언자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예언자 학교에서 정규 훈련을 받고, 이후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사람들이다.

신약은 구약의 사역 유형을 많이 따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계시한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교회의 목회적 직분을 구상할 때 대체로 예언자와 제사장 사이를 구분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전도자들을 부르시고 능력을 부어주셔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다. 그들은 교회의 양 떼를 돌보고 성례를 집행하는 장로들(교회 지도자) 아래에서 봉사했다. 웨슬리는 “사도적 전통에서도 복음 전도자의 직분이 목사나 죽교로서 행할 권한을 부여한 선례를 찾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경적 전제 위에서 영국 국교회에서 분리되지 않고 그 안에서 복음 전도자로 활동할 것을 가르쳤다.

 

b. 니케아 이후 복음 전도자와 예언자 직분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목사와 사제, 그리고 복음 전도자와 예언자라는 서로 다른 직분이 하나로 결합되어 한 사람에게 귀속되었으나, 그런 외면적 통합에도 여전히 두 직분 간 구분은 지속되었다. 

 

3. 특별 사역에 관한 지침

a. 메소디스트 연합체 내에서의 예언자와 제사장

메소디스트 신도회에 참여 학기 위해 요구된 유일한 조건은 “다가올 진노를 피하고자 하는 참된 열망”뿐이었다. 따라서 메소디스트 신도회에 속한 장로교인, 재세례파 교도, 퀘이커 교도 등은 자신들의 신앙적 견해를 그대로 지속하며 모임에 계속 참여할 수 있었다. 영국 국교회에서 초기 메소디스트 평신도들은 자신의 교구 목사 겸 제사장이 집례 하는 성례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메소디스트 신도회에서 별도로 성례를 행할 필요가 없었다. 메소디스트 설교자의 목적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의 신앙을 각성시키는 특별한 메신저로 섬기는 것이었다.

 

b. 분리에 관한 갈등

사제가 아닌 설교자로 임명된 다수의 메소디스트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권한을 확대시키기 원했고, 세례를 줄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1744년 첫 메소디스트 연회에서 웨슬리는 그들이 임명받은 목회적 설교에 집중할 것일 가르쳤다. 웨슬리는 미국의 현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의도를 반복해서 말했다. 

 

4. “이 존귀는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a. 하나 됨을 위한 일관된 호소

웨슬리는 미국 설교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예외적 허락을 하였지만 자신은 영국 국교회에서 분리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메소디스트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국 국교회 예배와 성찬에 참여할 것을 권하였다. 

 

b. 메소디스트의 특징으로서 분리 거부

종교개혁 이후, 교회에서 시작된 새로운 운동은 너무나 자주 모교회에서의 분리로 귀착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메소 디스들은 처음에 소속되어 있던 신앙 공동체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교회와 사회에서 분리되지 않고 내부에서 갱신을 이루어간 것은 메소디스트들이 누린 특별한 영광이다. 

 

D. 자격 없는 목사

1. 교회의 예배 참여에 대하여

a. 자격 없는 목사 문제

정식으로 안수를 받았으나 영적인 은사는 갖지 못한 자격 없는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웨슬리는 자격 없는 목사도 가치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거룩하지 않은 목사도 거룩한 세례와 성만찬을 베풀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다.

 

b. 자격 없는 목사가 집례 하는 성찬 참여

1787년 10월 7일 웨슬리는 그의 설교 “교회의 예배 참여에 대하여”에서 신앙에 문제가 있는 목사의 교회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웨슬리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을 예로 들며, 그들이 제사드리는 봉사의 자격을 박탈당했는가? 그들이 집례 한 하나님의 규례들이 무효로 되었는가?를 묻는다. 교회의 거룩함은 특정한 목사의 거룩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의 거룩함에 의존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규례를 통해 당신을 구원하기를 멈추지 않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제정 하신 규례에 참여하기를 그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2. 목사에게 은사가 부족할 때

정식으로 안수는 받았지만 영적 은사가 부족한 자격 없는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메소디스트 부흥운동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 신자들은 타락한 교회와 성직자를 멀리해야 하는가? 이것은 비국교도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거룩하지 못한 사람의 사역이라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면, 계속 참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목사는 사람의 손이 아니랄 하나님의 손에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부분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역이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역사하실 수 있음을 믿으면, 효력이 나타날 수 있다. 메소디스트들은 속회뿐 아니라 지역 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여해야 했다. 어떤 목사들은 정말로 성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공적 예배 자체를 거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3. 끊이지 않는 논쟁

 

4. 거룩하지 못한 목사의 성례

a. 하나님은 구원받지 않은 자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웨슬리의 역설적 결론은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제한된 자격 없음이, 그들이 집행하는 성례에 관한 제한되지 않은 약속을 축소시키지 않는다. 성례의 효력은 그것을 집행하는 목사의 도덕적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발생한다. 

 

b. 자격 없는 목사가 성례의 효력을 무효화하지 않음

성례의 효력은 집례자가 아닌 그것을 명령하신 분에게서 비롯된다.

 

5. 중요한 질문에 대한 고찰

웨슬리는 성경에 반하는 교리를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교회에 계속 다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중요하고도 민감한” 문제임을 인정하면서, “당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계속 들어도 무방하나, 해가 된다면 교회를 떠나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결정하라”라고 충고한다.

 

E. 복음적인 예배

1. 말씀과 성례 사역

a. 예배 공동체의 목사

사도행전 2장의 순서처럼(베드로의 설교 – 세례 – 공동체의 성장 – 사도의 가르침을 받음 – 믿음의 교제 – 떡을 뗌 – 함께 기도하며 예배 – 표적과 기사를 보고 두려워함 – 모든 것을 함께 통용 – 기하급수적 증가) 웨슬리 시대와 오늘날에도 신자의 예배 공동체는 그리스도인의 선포로 생겨난다. 예배 공동체는 복음적인 삶의 본질적 요소이자 목회의 본질적 요소이다. 

 

b. 은혜의 방편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 이루어가기

그리스도께서 부르신 공동체의 삶의 중심은 성례전적 삶이다. 성례가 없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께서 지시하시고 제공하시는 신앙을 깨우쳐주는 수단을 상실한 것이다. 메소디스트 신조 제16조에 의하면, “성례는 은혜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확실한 징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하셔서 그분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일으킬 뿐 아니라 강화시키고 확증하신다.”

 

c. 주님께서 제정하심

성례는 주님께서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다. 개신교인은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 성례만 주님께서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것으로 여긴다.

 

d. 그 외 다섯 가지 중세 성사들 : 견진성사, 고해성사, 신품 성사, 혼례 성사, 종부 성사

이것들은 은혜의 지속적인 증표가 되도록 주님께서 특별히 제정하신 것이 아니다. 웨슬리가 볼 때, 교리문답, 신앙고백, 성직 안수, 결혼에 대한 축복, 임종 사역은 주님께서 지정하신 거룩한 성례는 아니지만, 모두 중요한 복음 사역이다. 이미 앞에서 목회자의 직분에 포함된 기본적 요소임을 살펴보았다.

2. 메소디스트 신조 16조, 성례에 대하여

a.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및 영국 국교회 신조와의 연속성

성례에 관한 영국 국교회 신조 제 25조는 최소한의 수정을 거쳐 메소디스트 신조 제 16조가 되었다. 최소한의 수정으로 ‘저주’(damnation)를 ‘정죄’(condemnation)로 바꾸고,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이자 효과적인 징표’라는 문구를 ‘은혜의 분명한 징표’로 간소화했으며, ‘세례와 같은 성례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문구는 그 의미를 변경하지 않고 더 간결하게 ‘세례와 같은 성격’으로 편집했다. 

 

3. 은혜의 방편의 오용과 바른 수용

메소디스트 신조 제 16조에 따르면, 성례를 행할 때 여러 오용을 삼가야 한다. 성찬 탁자의 물질적 요소(떡과 잔)은 조배(바라봄)하거나 전시용으로 들고 다니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를 마치 신앙의 대상인 양 높이 받들거나 숭배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은혜의 방편으로 주어졌고 그렇게 여기도록 의도한 것이다.

주의 만찬이 유익한 효력을 나타내게 하려면 주님의 지시와 의도에 따라 그것을 받아야 한다. 무가치하게 성찬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심판을 초래한다(고전11:29). 믿음 없이, 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 없이, 또는 살아계신 주님 앞에 있다는 의식 없이 성찬을 받는다면 그것이 성찬을 무가치하게 받는 것이다. 메소디스트 신조 제 16조에는 이러한 점들이 모두 포함되어 언급되었다.

2020/05/01 - [book공방] - 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03 『목회신학』을 읽고

 

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03 『목회신학』을 읽고

존 웨슬리의 기독교 해설 3: 목회신학토머스 C. 오든 상세보기 『목회신학』은 첫 장으로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진한 감동과 울림이 있는 책이다. 존 웨슬리가 목회의 현장 속에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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