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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금지법에 대하여

이참리 2020. 6. 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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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의안원문(장혜영의원 등 10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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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파일은 차별금지법 의안원문인데, 생각들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별 금지법은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차별하지 않는다는 법인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1. 질서에서 무질서로

 

하나님의 세계는 분명 질서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으며, 혼돈에서 질서로, 공허함에서 충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2020/06/05 - [Biblie톡] - 천지창조(창세기 1장)

천지창조(창세기 1장)

성경은 이렇게 창조를 선포하며 시작한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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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계는 질서를 무너뜨리는 세계가 아니라, 질서를 세워 나가는 세계입니다. 질서라는 말은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차별과 구별은 엄연히 다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5366&cid=40942&categoryId=31614

차별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 일반적으로 차별 받는 사람들의 실제행동과는 거의 무관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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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dict.naver.com/#/entry/koko/84bb2377cdb546b3b4212844645b56cb

Naver English-English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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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과 구별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질서의 세계이며, 이 질서는 차이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 부모와 자녀의 구분, 스승과 제자의 구분 등입니다.

 

또한 질서의 세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세계입니다(롬13:1). 그런면에서 하나님의 세계는 임금의 권위를 인정하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며, 상전의 권위, 스승의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위에 무조건적 맹종을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최종 권위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반면 사단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권위를 무너뜨리며 권위에 도전합니다. 마치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나님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 했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의 시대적 흐름을 보면, 포스트모던 이후 점차 질서를 무너뜨리는 쪽으로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날의 사람들은 "권위", "순종"이라는 단어를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권위적인 대통령, 권위적인 상사, 권위적인 부모, 권위적인 스승을 싫어 합니다. 권위를 무시합니다. 대표적으로 "꼰대"를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윗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권위 적인 모습이 보이면 "꼰대"로 치부합니다. 물론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스승의 권위가 무너졌고, 부모의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모든 권위에 저항했던 프랑스의 68혁명과 같이,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이미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2. 선순환에서 악순환으로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님의 질서를 선순환 시키는 나라입니다. 권위자는 그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그 권위를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닌 약자를 배려하고 선대하는데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하셨던 피조세계를 정복하며 다스리고 충만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래서 상전이 그 종을, 스승은 제자를, 부모는 그 자녀를 주님께서 주신 권위로 돌봅니다. 성경은 항상 약자를 배려하며 약자를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줍니다. 그리하여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돌보며, 아랫 사람은 윗 사람을 공경하는 것으로 선순환 됩니다.

 

반면 사단의 나라는 하나님의 질서를 악순환 시킵니다. 권위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가 자신의 것인줄 알고, 자신의 욕망대로 사용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갑질을 서슴치 않고 행합니다. 스승은 제자들의 업적을 빼앗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학대합니다. 최근 일어나는 수 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아도 잘 알수 있습니다. 윗 사람은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고, 아랫 사람은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끌러 내립니다. 곧 악순환 되는 사단의 나라입니다.

 

모든 질서와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우리는 그 권위를 선순환 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3.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열역학적 상태함수(state function)의 하나로서, 열역학적 계에서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즉 유용하지 않은 에너지를 기술할 때 이용됩니다. 무질서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계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사용 가능한 에너지와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사용 가능한 에너지는 그 계가 외부에 일을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에너지이며,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는 존재하기는 하지만 외부에 일을 하는 데 쓰일 수는 없는 에너지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날 방 안에 놓인 에어컨이 작동하여 방 안 공기의 온도를 낮추는 경우, 방 안 공기의 엔트로피는 줄어듭니다. 그러나 방 안팎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계를 보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에어컨이 작동함에 따라 방 바깥으로 배출되는 열에너지가 발생시키는 엔트로피의 양이 방 안에서 줄어드는 엔트로피의 양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커피가 식으면서 커피와 주변 공기를 포함하는 전체 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합니다. 고립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열적 평형상태(더이상 차갑게 되지 않는 상태), 즉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상태 쪽으로 변화한다.

 

열역학제이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거시적으로 보면 세상에는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열역학적으로는 전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상태에 도달할 것이며, 이 상태는 어떠한 자발적 운동이나 생명 등이 유지될 수 없는 극단적인 무질서의 상태로, 우주의 열역학적 종말을 뜻합니다. 이 상태를 열죽음(heat death)라고 부르는데, 이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소립자로 분해되고 사방이 구분되지 아니하며, 넓은 우주 공간에 소립자만 무질서하게 돌아다니게 됩니다.

 

인간 문명의 발달이 더이상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으로, 궁극적 무질서의 세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4389746&cid=60217&categoryId=60217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열역학적 상태함수(state function)의 하나로서, 열역학적 계에서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즉 유용하지 않은 에너지를 기술할 때 이용된다. 무질서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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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스도인의 역할

 

결국, 하나님의 질서 세계를 유지 보존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자신의 욕망 추구에 사용했던 모습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개인 구원에만 치중하여,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리 크게 염두하지 않았습니다. 생활의 성결이 무너졌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약자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갑질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자,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차별 금지법을 찬성합니다. 그러나 차별과 구별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질서를 무질서로 아끈다는 점에서 차별 금지법을 반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세워가야 합니다. 이 땅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는 무질서와 공허함이 아닌 질서아 충만의 세계입니다. 권위를 존중하며 주께서 주신 각자의 역할을 질서있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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