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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언어 - 3장_입양_가족의 언어(거절에서 용납으로)

이참리 2022. 4. 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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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양 : 가족의 언어(거절에서 용납으로)

 

"사랑 안에서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로 입양하셨으니."(에베소서 1:4-5)

 

문화적 괴리

 

1세기 로마에서 입양된다는 것은 대단히 영예로운 일이었다. 고대 로마 문화에서 입양은 이류가 아닌 인류가 되는데 필요한 특전이었다. 구원을 가리키는 이 성경 용어의 1세기 맥락을 이해하면 오늘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 강력한 함의를 헤아리게 된다.

 

'입양'을 의미하는 헬라어 후이오테시아(huiothesia)는 '아들'을 뜻하는 후이오스(huios)와 '배치'(a placing)를 뜻하는 테시스(thesis)의 합성어다. 입양은 누군가를 아들의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입양은 한 가정에서 다른 가정으로의 이동이었다. 

 

신학적으로 거듭남(born again)과 양자 됨(adoption)은 서로 다른 별개의 개념이다. 거듭남은 출생으로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고 양자됨은 가족의 권리와 특권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거듭남과 양자됨은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가진다. 양자는 새로운 가족의 이름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였다. 

 

가족 밖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받은 무수한 복을 열거하면서 유대인들은 "양자 됨"(adoption as sons, fha 9:4)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방인은 그런 축복 "밖에"있던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고 한다(엡 2:12) 오늘날 불신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와 떨어져 하나님의 가족 밖에 있던 우리의 위상을 먼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만 성경이 말하는 입양(자녀됨)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선물인지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회심 이전 우리를 가리켜 "진노의 자녀"라 했고, 예수님은 거짓말하는 바리새인에게 "아비 마귀"의 모국어를 말한다고 하셨다(엡 2:3, 요 8:44). 중립지대는 없다. 인간이 타고난 대로 사탄의 가족 안에 있든지, 하나님의 가족 안으로 초자연적으로 재탄생하든지 둘 중 하나다.

 

관계적 존재

 

사람과의 접촉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실존 안에 내장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함과 친근함이 필요한 존재로 설계하셨다.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의 영속적 관계 안에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은 관계적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일관되게 가족의 언어를 사용한다. 

 

가족에 관한 옛 언어와 새 언어

 

신구약 공히 풍성한 가족 언어를 담고 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고유한 관계는 가족의 언어로 표현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셨지만, 구약에서도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낳은 자, 이스라엘을 돌보고 양육하는 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로 그려진다.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등졌을 때 역시 가족의 언어로 표현된다. 이스라엘이 우상과 거짓 신들을 섬길 때, 간음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가족 언어의 정수인 '장자(맡아들)'는 예수님과 이스라엘을 둘 다 칭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의 장자로도 불리셨다. 예수님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롬 8:27)이자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골 1:18, 계 1:5) 천사들이 경배해야 할(히 1:6) 장자시다.

 

가족으로서 얻는 특권

 

1. 가족의 이름, 즉 성을 얻다.

바울은 신자들이 하늘의 아버지로부터 이름을 받으며 이는 지상의 어떤 이름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며 우리가 거룩하게 경배해야 하는 이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household of God)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의 주님을 '아바(abba)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실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아 우리 역사 가장 친밀한 이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 시대에 양자는 새 가족의 이름을 받으면 기존 가족과의 모든 끈을 상실했다. 그의 과거 부채는 탕감되고 새롭게 획득한 부자간의 신실함이 주는 모든 유익을 누리는 새 삶으로 들어갔다. 

 

2. 유산을 받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유업(inheritance)을 얻을 것이다. 유산은 품삯이 아니다. 품삯은 일을 해 벌어들인 것인 반면, 유산은 미래에 임하며, 일한 결과가 아닌 가장과 맺은 관계의 결과로 주어진다. 이 미래의 유산과 관련된 것이 기독교의 소망 교리다. 성경의 소망은 막연한 바램이 아니다.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는 확실성과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에 그의 뜻대로 성취하실 것이라는 확고한 소망을 갖는다. 

 

이 소망 안에 우리 몸의 속량도 포함되어 있다(롬 8:23). 우리가 현재 모든 피조물이 종속된 썩어짐을 경험하며 "속으로 탄식"할지라도(롬 8:23) 우리의 양자 됨에는 필멸의 몸에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롬 8:11).

 

3. 성령을 얻다

하나님은 우리 미래의 유업을 보장하는 성령을 주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기업(inheritance)의 보증"이라고 말한다(엡 1:14, 참조. 고후 1:22, 렘 5:5). 집을 사는 사람이 잔금을 충실하게 치르겠다는 보증의 표시로 선금을 내놓는 것처럼 하나님은 나머지 상속을 이행하겠다는 서약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다. 성령은 우리 안에 구원의 확신을 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깊은 확신을 제공하신다. 

 

4. 영적 형제자매를 얻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요 14:18). 대신 우리를 방대한 가족 네트워크로 끌어들이신다.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로운 형제자매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 자로서 신자는 전 세계의 영적 형제자매들과 한 가족을 이룬다. 이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졌을 뿐 아니라 우리 서로 간의 관계도 달라졌다. 

 

결론

 

 

'구원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영원한 집이 없던 당신이 새 가족 안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것은 죄와 사탄에 얽매여 있다가 천상의 아버지로부터 오는 사랑과 훈육을 받는다는 뜻이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보증으로 삼고 결코 썩지 않는 영원한 유업(유산)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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