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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마틴 부처 (2)
이참리의 하루한장
마틴 부처는 스트라스부르트의 대표적인 개혁가로 화해의 사람이었다. 프로테스탄트들과 로마가톨릭의 화목을 도모하였고, 루터 진영과 쯔빙글리 진영간에 신학적 차이에도 화합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영국국교회가 대륙의 칼빈주의적 방향으로 나가도록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16세기의 에큐메니스트(Ecumenist)라 할 수 있겠다. 마틴 부처(Martin Butzer, 1491-1551)는 16세가 되던 1507년 도미니칸 수도원에 들어갔고, 1510년에는 도미니칸 수도사로 헌신하였다. 1515년까지 그는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에서 신학공부를 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에라스무스의를 통해 신학과 인문학을 접하기도 하였다. 1518년 4월에 신학논쟁에 참석하기 위해 하..
칼빈과 부처가 목회 했던 스트라스부르그 칼빈이 1538년 9월부터 1541년 8월까지 목회하며 저술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칼빈은 이 기간에 스트라스부르그에 머물며 마틴 부처(Martin Bucer)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독일과 국경에 위치하고 있어, 독일과 비슷하면서도 프랑스 고유의 멋이 있는 쁘띠 프랑스로 유명한 곳이다. 구시가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될 정도록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며 아름 다운 곳이기도 하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목회하며 제네바에서와는 다르게 아무런 방해 없이 권징을 행할 수 있었고, 설교를 가장 주시하는 예배 순서를 시행했아며, 시편 찬송을 회중 찬송으로 도입하였다. 칼빈의 생애에 있어서 이 기간은 학문적으로나 목회적으로 성숙을 이루는 기간이었다. "방패"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