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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술(포도주)

이참리 2020. 5. 27.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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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30여년이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안에 좋은 전통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교회 다니면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이 생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 땅에 처음 선교사들이 들어 왔을 때, 열다섯, 열여섯 먹은 아이들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고. 또 가을철에 농사 일이 다 마무리가 되고 추수가 끝나면, 겨울 내내, 남자들이 사랑방에 모여 밤새도록 마작이나 화투 등의 노름을 하며 술에 취해 그 긴 겨울을 다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술과 담배, 노름 하는 것을 죄악시 하고 금기 시켰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다니지 않는 사람이든, 사람들의 머릿속엔 예수를 믿으면 술과 담배를 하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술과 담배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좋은 전통입니다.

 

그러나 고대근동지방의 유대교 문화는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특별히 포도주에 관해서, 포도주를 연하게 희석시켜 물을 대신하여 마셨고 포도주를 하나의 음식으로 즐겨 먹었습니다. 당시 유대문화 속에 계셨던 예수님도 당연히 포도주를 드셨을 것이고, 심지어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이미 취한 사람들로 하여금 포도주를 더 마시라고 만들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고린도 유적지 신전기둥

그러면 오늘 날 우리의 삶 속에서 기독교인이 세상에 속하여 살며, 술을 먹고 마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의 모습 속에서 술의 문제는 고린도전서 8장에 나오는 우상 제물에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를 적용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라는 도시는 신전이 있고, 수 많은 우상들을 섬기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들은 대부분 그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없고, 사서 먹자니 찝찝하고.. 고린도 교회에서 고기 먹는 문제로 논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우상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저 나무요 쇳덩이 이기 때문에, 그 앞에 잠깐 놓여 졌던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혹 연약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꺼림칙하거든 먹지 말라고 말합니다.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마무런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이어서 무슨 말을 하냐면, 나는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마무런 거리낌이 없지만, 혹시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내가 우상제물의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실족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겠다. 우상제물이 우리의 신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게 한다면, 먹지 않겠다는 것이죠.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음식으로 술을 먹는 즐기는 것이 그리 얼마나 큰 잘못이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믿음이 연약한 누군가가 시험이 든다면, 술 안먹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홍수 심판이 끝난 후 노아는 포도원을 경작하여 그 수확물로 포도주를 마시고 자신의 장막에서 벌거 벗은 모습이 등장합니다. 당시 유대교적인 문화로 보았을 때,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것 자체를 가지고 그리 크게 죄악시 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면 포도주를 마신 것 자체가 죄는 아니라 할지라도, 술에 취하여 벌거 벗었으니, 실수한 것 아닐까요?

 

그런데 말씀을 자세히 보면, 지금 노아가 술을 먹고 잠들어 있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장막입니다.

창세기 9장 21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여기서 그 장막이라는 말은 노아의 장막을 말합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자기 집에서, 자기 방에서 벌거벗고 잠이 들은 것입니다노아가 지금 술에 취하여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추대를 부린 것도 아니고, 자기 집, 자기 방에서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으면서, 봐라 의인인 노아도 술을 먹게되면 실수하지 않느냐? 우리도 노아처럼 술 먹으면 안되고, 실수하면 안된다.. 라고만 이 본문을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창세기 9징 25-27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아무리 성격이 괴팍하고 못된 아버지라 할지라도, 자기가 실수한 것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이렇게 저주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노아의 세 아들, , , 야벳 중에 실수를 한 것은 둘째 함인데 저주는 함의 아들 가나안이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하체를 보고 비난한 함을 저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잘못 없는 손자 가나안을 저주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햐야 할까요?

 

또 셈에게는 축복을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계보까지 이어지는 계시적인 축복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아담, 노아, 셈,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아는 자신의 실수를 지적한 것에 대하여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적인 계시를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는 단순히 술에 취해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노아가 술먹고 실수한 헤프닝 이었다면, 굳이 성경에 기록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심판 후, 노아가 포도주에 취한 사건은 구속사적인 입장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포도주는 단순한 술이나 음식이라기 보다, 상징적인 의미, 즉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신명기 295-6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게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이후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입히시고 먹이십니다.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고,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동안 먹이시고 입히셨음에도 불구하고 금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떡과 포도주, 독주입니다.

 

여기에서 떡을 금하셨다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서 먹는 떡을 금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만나 외에 스스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4에 보면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광야에서는 포도주를 금하셨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함께 먹고 즐거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했을 때에, 즐거운 잔치가 벌어지고, 그 잔치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요소가 바로 포도주 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는 포도주에 관한 상징적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 256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요엘서 318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천국 잔치가 벌어지게 되는데, 그 곳에서 왕이신 주님께서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면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호세아 9에서는 포도주가 없는 현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호세아 9장 1-3

1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2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그들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3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은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타락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새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 p. 베로네제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아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혼인 잔치라고 생각면 당연히 풍요로와야 합니다. 그런데 풍족해야하는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흥이 깨어진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깨어졌던 혼인잔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진정한 신랑 되심으로 혼인 잔치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고 그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29절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마지막 순간에 병사가 내미는 신포도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928-30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고 신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말씀하십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창세기 노아의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곧 구원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 8명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홍수 심판이 끝나고 구원 받은 노아는 농사를 시작하는데 처음으로 포도를 심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되어 있지만, 정확하게 번역하면 포도원 경작한 것입니다. 여기서 심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셨다라고 할 때, 창설하다라는 말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그 포도를 수확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말하는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즉 심판 후에 찾아오는 구원의 기쁨을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한 것이죠. 그리고 노아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벌거벗은 것처럼, 벌거벗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처럼, 노아도 자신의 장막에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노아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안식을 누렸습니다.

 

노아가 단지 술에 취해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심판 후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기쁨으로 누리며 즐거워 한 것입니다. 그 때 함이 노아의 장막에 들어와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지적하며 비웃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실수를 비웃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나라를 비웃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조롱하고 비웃은 큰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구원을 비웃은 자를 향하여서 진노하고 저주한 것은 매우 성경적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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